치료 6개월부터 고비… 직장 핑계 술ㆍ담배는 물론 운동도 ‘나몰랑’
#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프지?” 토요일 오후 모처럼 시간 내 실내 골프연습장을 찾은 K(45)씨는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온 몸에 힘이 빠지고 극심한 통증이 계속됐다. 결국 K씨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 응급실로 들어갔다. 진단 결과, 5년 전에 앓았던 협심증이었다. 상황은 당연히 악화됐다. 5년 전에는 증상이 심하지 않아 약물치료를 하면 됐지만 이번에는 심장혈관에 스텐트 시술을 받아야 했다. “의사가 운동 좀 하고, 금연하고, 술마시더라도 약은 꼭 챙겨먹으라고 당부했는데.” 후회막급이지만 때는 늦었다. 스텐트 시술을 받고 퇴원한 K씨는 금연ㆍ금주를 선언했다.
협심증 심근경색증 동맥경화증 등 관상동맥질환자 가운데 증상이 호전되면 먹던 약을 끊고, 외래치료까지 기피하다 상태가 악화된 이도 적지 않다. 대다수는 흡연 음주 비만에 노출돼 있지만 사태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해 화를 자초하고 있다. 전문의들은 “40~60대 남성 환자가 요주의 인물”이라고 했다. 직장생활을 핑계로 음주와 흡연을 즐기고, 체중관리에도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경미한 환자의 약 복용 중단이 문제
전문의들은 질환 발생 후 6개월에서 1년이 고비라고 말한다. 이 기간에 지속적으로 약을 복용하면 증상이 호전되기 때문이다. 환자 가운데 병이 완치된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관상동맥 관련 질환은 완치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구본권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협심증 등 관상동맥 질환은 완치가 불가능하다”면서 “질환을 처음 발견했을 때 혈관이 20% 좁아졌다면 아무리 약을 먹어도 20%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현재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약을 먹는 것”이라면서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으면 상태가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조상호 한림대성심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증상이 호전됐다고 약을 먹지 않고 무절제하게 생활하면 심하면 심근경색으로 사망할 수 있다”면서 “관상동맥 질환은 평생 관리해야 할 만성 질환”이라고 말했다.
40~60대 남성 환자들도 할 말은 많다. 최근 7년 만에 협심증이 재발해 병원에 입원한 C(51)씨의 말을 들어보자. “7년 전 협심증이 발견됐지만 다행히 약을 먹으면 치료된다고 해서 안심했죠. 퇴원 후 3개월 동안 열심히 치료했습니다. 저녁에 술 약속도 안하고, 주말마다 운동하고, 그 좋아하던 고기도 끊었죠. 하지만 그 때뿐이었습니다. 회식자리도 가야하고, 술 접대를 해야 하는 직장인의 한계라 할까요. 다시 병원에 입원하고 나니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합니다.”
전문의들은 시간적 여유를 갖고 생활습관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박재형 고대안암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직장인의 경우 하루아침에 금연ㆍ금주를 할 수 없다”면서 “3개월, 6개월 단위로 하나하나 생활습관을 개선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민호 순천향대서울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술을 마실 수밖에 없다면 전보다 덜 먹고, 담배 피는 개수도 줄이는 등 생활습관을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술 마셔도 약은 반드시 먹어야
일부 환자 가운데 술 마신 뒤 약을 먹으면 간에 부담이 된다고 약을 복용하지 않는 이가 있다. 전문의들은 음주를 해도 약은 꼭 챙겨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변이형 협심증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변이형 협심증은 혈관이 경련을 일으키면서 생긴다. 이 교수는 “술을 마셨다고 약을 먹지 않으면 다음날 새벽 변이형 협심증이 발병할 수 있다”면서 “술을 마셔도 약은 반드시 챙겨 먹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조 교수는 “일부 환자 중에는 처방된 약보다 건강보조식품을 더 잘 챙겨먹기도 한다”면서 “치료를 위한 최선책은 처방된 약을 제때 복용하는 것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나이, 가족력은 어쩔 수 없지만 흡연 당뇨병 비만 이상지질혈증 등 위험요인은 철저히 관리하면 예방할 수 있다. 전문의들은 이들 위험인자에서 노출되지 않으려면 환자 가족이 질환치료에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자 혼자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의들은 외래 치료 시 아내 등 가족 동반을 주문했다. 가족이 환자상태를 정확히 알면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아무리 환자에게 말해도 듣지 않는 이가 많다”면서 “가족이 환자상태에 대해 알게 되면 금연ㆍ금주 등 생활습관 개선을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관상동맥 질환은 평생 치료해야 할 질환이기 때문에 가족도 환자상태를 점검해야 한다”면서 “가족이 환자가 약을 잘 챙겨 먹는지, 금연 약속을 지키는지 등 질환치료에 도움될 수 있도록 격려와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말보다는 사진ㆍ동영상 등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치료에 도움이 된다. 이 교수는 “질환 초기 환자에게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여주면 환자가 경각심을 갖는다”고 말했다.
관상동맥 질환은 40대 이상 연령층에서 주로 발생하지만 최근에는 20~30대 환자도 증가하고 있다. 조 교수는 “청소년기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고, 비만한 사람은 아무리 나이가 젊어도 관상동맥 질환에 노출되기 쉽다”면서 “젊은 나이에 관상동맥 질환에 노출되면 육체는 물론 정신적으로 힘들어지기 때문에 금연과 체중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약물치료와 함께 생활습관을 개선하면 좋지만 이런 노력이 힘들면 약이라도 잘 먹어야 심각한 일을 당하지 않는다”면서 “증상이 없다고 약을 먹지 않는 우를 범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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