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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비디오 불법복제부터 페북 영화 보기까지… 불법공유의 역사

입력
2018.07.0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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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테이프 불법복제 경고영상과 경고문구. 유튜브 캡처
비디오 테이프 불법복제 경고영상과 경고문구. 유튜브 캡처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의 어린이들은 무분별한 불량 불법 비디오를 시청함으로써 비행청소년이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1980~90년대 비디오 테이프로 만화영화를 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기억할만한 불법 복제 경고영상. ‘이 테이프를 무단 복제하는 경우 법에 의해 처벌받게 됨을 알려 드립니다’라는 경고 문구 뒤에 매섭게 등장하는 만화 캐릭터 호랑이와 불법 복제 비디오를 호환에 비교하는 문구가 아이들 머릿속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시 비디오 테이프를 판매하던 배급사들은 불법 복제를 막기 위해 이런 경고영상, 경고문구를 본영상 앞에 삽입했다. ‘불법 복제를 하면 원본 테이프에 손상이 갈 수 있다’는 거짓 엄포를 놓기도 했다.

배급사들이 거짓말(?)까지 했던 건 그만큼 불법 복제 문제가 심각했던 탓이다. 특히 영화 마니아들은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린 정품을 복제해 소장용 테이프를 따로 만들곤 했다. 정보통신(IT)기업을 경영하는 한상준(50)씨도 그 중 하나. 한씨는 “비디오 플레이어 2개만 있으면 누구나 손쉽게 복제를 할 수 있었다”며 “2만~3만원 하던 정품 테이프의 5분의 1이 안 되는 가격에 소장용 테이프를 마련했다”고 회상했다. 가끔은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린 테이프마저 불법 복제 테이프일 때도 있었다.

당시 열악한 외화 수입이 불법 복제를 부추겼다. 한씨는 “1980년대 초만 해도 한국 극장에 아직 걸리지도 않은 영화가 일본 TV에서 방영되는 경우도 있었다”며 “세운상가에선 일본 미국 등에서 방송된 영화를 녹화해 판매하는 불법 복제 버전을 구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화질은 형편없고 번역도 엉망이지만, 한씨는 그렇게 성룡 영화와 007 영화를 접했다. 1985년 미국 개봉 당시엔 한국에서 상영이 금지됐던 영화 ‘빽투더퓨쳐(Back To The Future)’는 1987년 국내 개봉이 이뤄질 때까지 2년간 불법 복제 테이프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불법 공유’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부터 휴대폰 하나면 뭐든지 찾아볼 수 있는 현재까지, 플랫폼의 변화에도 제값을 지불하지 않고 콘텐츠를 이용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있어 왔다.

음악도 마찬가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 강남역 주변엔 100m마다 ‘길보드차트(길거리+빌보드차트)’가 있었다. 최신 가요가 흘러나오는 리어카에서 판매하던 오디오 테이프들은 복제품으로 저렴한 가격에 판매됐다. “영화 한 편을 복제하기 위해 상영시간만큼을 할애해야 하는 비디오 테이프와 달리 오디오 테이프는 고속 복사장치만 있다면 1분에 10개도 만들 수 있다”는 게 한씨 설명이다.

SNS 상에서 이뤄지는 영화 불법공유. 페이스북 캡처
SNS 상에서 이뤄지는 영화 불법공유. 페이스북 캡처

불법 복제 비디오ㆍ오디오 테이프는 인터넷에 그 자리를 내줬다. 때맞춰 MP3플레이어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소리바다’ 등 공유사이트에서 디지털 음성파일을 내려 받아 음악을 즐겼다. 대학생 채모(25)씨 역시 마찬가지. 채씨는 “MP3플레이어가 인기를 끌던 2000년대 초반, 주변 친구들 모두 P2P(개인 대 개인 파일 공유) 사이트에서 공짜로 음악을 다운받았고 그게 문제라고 여기지 않았다”고 했다. 채씨는 현재 유료 음악 다운로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지만, 영화ㆍ드라마는 여전히 토렌트나 ‘파일노리’ 등 웹하드에서 내려 받아 본다. 음악에 비해 영상물이 정품을 구입하는데 더 큰 돈이 드는 탓이다. 채씨는 “나 정도면 대한민국 평균 수준의 불법 다운로더 아니냐”고 반문했다. 다만 “최근 불법 공유되는 미드(미국 드라마) 자막이 단속 대상이 되는 등 제재가 강화돼 영상도 정식 구매해 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최근엔 아예 파일을 내려 받지 않고 스트리밍 형태로 불법 공유가 이뤄진다. 특히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영화 공짜로 보기’ 계정이 2시간 가까운 영화 한 편을 통째로 게시하고, 이용자들은 해당 계정을 구독하거나 서로를 태그하며 영화를 감상하는 식이다.

검색 하나면 영화 한 편이 뚝딱 나오는 경우도 있다. 취업준비생 최모(28)씨는 영화가 보고 싶을 때마다 해외 검색 사이트에 ‘(영화제목)+다시 보기’라고 입력한다. 그러면 바로 영상을 볼 수 있는 웹페이지가 뜬다. 개봉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영화도 바로 볼 수 있다. 최씨는 “웹페이지가 광고로 도배돼 있지만, 공짜로 최신 영화를 즐길 수 있고 휴대폰으로 손쉽게 볼 수 있어 좋다”라면서도 “문제의식이 드는 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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