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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로 무산된 ‘최연소 박사’… 한국 학계 해묵은 맹점 또 드러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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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로 무산된 ‘최연소 박사’… 한국 학계 해묵은 맹점 또 드러나다

입력
2015.11.2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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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학술지, 한국 네티즌들 지적에 자체심사

“박석재 지도교수의 발표자료 인용 명시 안해”

박석재 위원 “송군 큰 상처… 내게 돌 던져달라”

국내 최연소 박사가 될 송유근(17. 오른쪽)군이 지도 교수인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과 함께 21일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열린 '과학영재아카데미 합동탐구모임'에서 청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최연소 박사가 될 송유근(17. 오른쪽)군이 지도 교수인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과 함께 21일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열린 '과학영재아카데미 합동탐구모임'에서 청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학천재’ 송유근(18)군이 저명한 국제학술지에 게재한 연구논문이 지도교수의 학술대회 발표자료를 베꼈다는 이유로 철회돼 파장이 일고 있다. 이로써 송군은 내년 2월로 예정된 국내 최연소 박사학위 취득이 불가능해졌다. 과학자들은 표절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학계의 문제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송군의 논문이 실렸던 천체물리학저널(APJ)을 발간하는 미국천문학회(AAS)는 24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표절을 이유로 해당 논문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선대칭, 비정상 블랙홀 자기권에 대한 재고’(Axisymmetric, Nonstationary Black Hole Magnetosphere: Revised)라는 제목의 이 논문에 송군이 제1저자 겸 공동 교신저자, 지도교수인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이 제2저자 겸 공동 교신저자로 참여했다. 학회는 이 논문에 대해 “박 위원이 2002년 아시아태평양 이론물리센터(APCTP) 학술대회에 제출한 발표자료 ‘힘 작용 없는 정상, 비정상 블랙홀의 자기권 비교’ (Stationary Versus Nonstationary Force-Free Black Hole Magnetospheres)에서 광범위하게 내용을 가져왔기 때문에 저작권 위반 가능성이 있다”고 철회 이유를 밝혔다.

표절 논란은 이번 논문 게재 사실과 지난 17일 송군이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인터넷에서 본격화했다. 일부 누리꾼들이 박 위원 발표자료와 이번 논문을 비교하며 표절 의혹을 제기했고, 이 소식이 미국까지 전해지면서 APJ가 14일 자체 심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박 위원은 AAS의 철회 발표 직전까지 표절 의혹을 부인해 왔다. 그는 “논문에 등장하는 방정식들의 4분의 3은 2002년 발표자료와 비슷하지만 나머지 핵심 내용은 송군이 처음 제시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비슷한 부분은 기존 블랙홀 연구를 언급한 내용이어서 논문 가치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제목에 ‘재고(Revisited)’를 명시했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는다”며 “송군이 직접 답을 구한 편미분방정식은 다른 논문에 전혀 실리지 않은 내용”이라는 입장을 강력하게 피력했다. 천체물리학계의 SCI 학술지인 APJ는 이번 논문이 제출된 지 한달여 만인 8월 13일 이례적으로 빠르게 게재를 승인했다.

과학계에서는 문제가 된 박위원의 학회 발표자료(프로시딩ㆍProceeding)를 연구논문(Paper)과 다르다고 본다. 발표자료는 학회나 워크숍 등에서 연구내용을 발표하기 위해 만든 자료로, 과학자들이 이를 기초로 정식 논문을 작성한다. 이 경우 프로시딩을 토대로 했다는 사실을 논문에 명시한다.

박 위원은 이를 제목에 명시했다는 주장이다. 박 위원은 “APJ에 문의한 결과 에단 비쉬니악 수석 에디터로부터 프로시딩은 논문으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에 겹쳐도 문제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APJ 심사 때 비쉬니악 에디터는 스스로 빠졌다. 박 위원이 1980년대 미국 텍사스대에서 공부하던 시절 당시 지도교수가 바로 비쉬니악 에디터였다.

APJ 심사단은 “프로시딩을 논문 기고 전 초안용으로 흔히 사용한다”며 “이번 경우는 예외적으로 많이 겹치는데 정식으로 인용하지 않았다”며 송군과 박 위원에게 논문 철회를 권고했다. 심사단은 논문에 다른 출판물 내용을 실을 때 인용부호를 쓰거나 참고문헌에 해당 출판물을 명시해야 하는 학회 윤리규정을 근거로 들었다. 한 천문학자는 “다양한 출판물에 대해 표준화한 인용 기준이 없기 때문에 이번 경우 해당 학술지의 판단을 따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과학자들은 이번 사건을 표절 판단 기준을 명확히 세우고 철저히 교육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인용 대상인 출판물 범위와 구체적 인용 방식에 대한 지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체계적인 과학영재 교육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날 AAS의 표절 발표 직후 송군이 재학 중인 대전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박 위원은 “솔직히 송군을 좀 더 빨리 넓은 무대로 보내고 싶은 욕심에 2월 졸업을 목표로 서두른 게 사실”이라고 털어 놓았다.

검정고시로 초ㆍ중ㆍ고교 교육과정을 끝내고 9세 때 인하대에 입학한 송군은 “재능 있는 아이들을 분리시키는 교육환경 때문에 늘 외로웠다”는 심경을 밝힌 적이 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벅찬 기대를 받으며 재능을 폄하하는 악성 비난에도 시달려야 했다. 박 위원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송군이 많은 상처를 받았다”며 “책임은 저에게 있으니 저에게 돌을 던져달라”고 호소했다.

송군이 UST 학위 취득 시험에 응시하려면 기본 요건으로 SCI 논문이 필요하다. 이번 철회로 송군은 요건을 갖추지 못하게 됐다. 박 위원은 “다른 SCI 논문들을 추가해 송군을 더 나은 박사로 만들어 졸업시키겠다”고 강조했다. UST 측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구성해 이번 사안을 검토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임소형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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