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현 기자

등록 : 2018.04.25 04:40

[집 공간 사람] 남해 앞 온실 품은 카페... 큰 창문은 무인도 하나씩 담은 액자

전남 여수 돌산읍 ‘비스토니'

등록 : 2018.04.25 04:40

대기업 퇴사 후 제 2인생 꿈

카페ㆍ온실ㆍ집 복합건물로 구현

도로에선 긴 벽처럼 보이지만

지하카페 탁 트인 전망에 탄성

온실 반대쪽 카페공간 지붕 없어

바다ㆍ바람ㆍ햇볕 그대로 들어와

"주변 자연과 조화 이루면서

내ㆍ외부와 지상ㆍ지하 경계 해체"

전남 여수 돌산도에 온실을 품은 카페 겸 집이 들어섰다. 대기업에 다니다가 제2의 인생을 꿈꾼 건축주가 남해 앞바다에 그림처럼 박힌 3개의 무인도에 반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자신이 살지 않는 곳을 향해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건 실례다. 그러나 관광객의 눈엔 정말로 아무것도 없을 때가 있다.집, 바다, 도로, 갯벌 외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전남 여수 돌산도에 지난해 가을, 온실을 품은 카페 겸 집 한 채가 들어섰다. 희한한 건 카페가 들어온 후에도 돌산도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지나가는 이가 일부러 멈춰 건물 뒤쪽으로 돌아들어오기 전까지 카페는 그저 나즈막한 벽처럼 보인다.

그림처럼 박힌 3개의 무인도

대기업에서 안정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던 건축주는 나이 마흔을 넘기면서 누구나 맞는다는 생의 전환기 앞에 서게 됐다. 회사의 임원으로 뿌리를 내릴 것인 것인가, 다른 길을 찾을 것인가의 기로에서 그는 결국 후자를 택했다. “너무 회사에만 치중되는 삶을 살다 보니 이후의 생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나머지 인생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가족과 좀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위에서 본 모습. 도로에서 보면 길고 까만 벽처럼 보이지만 계단을 돌아 내려오면 본격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퇴사를 결심한 후부터 전국을 여행하며 적당한 땅을 찾던 그에게 바닷가 경사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유는 바로 앞 서쪽 바다에 그림처럼 박힌 3개의 무인도 때문이었다. 여수반도에서 돌산대교를 넘어가야 들어갈 수 있는 돌산도에는 총 19개의 무인도가 있는데, 그 중 서근도와 백도, 독도가 이 앞에 점점이 붙어 있다.

설계를 맡은 조경빈 건축가(필동2가 아키텍츠)에게 건축주가 요구한 것은 “카페, 식물원, 그리고 집이 함께 있는” 건물이었다. “온실은 건축주 아내 분의 아이디어였어요. 젊을 때 이탈리아에서 오래 거주했는데 그때 정원에 대한 기억이 각별히 좋았다고 합니다. 집을 짓든 카페를 짓든 식물의 생명력으로 가득한 공간이기를 원했어요.”

카페 내부. 지하라서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다. 빈티지한 의자와 테이블은 모두 이태원 빈티지 가구 거리에서 공수해 왔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카페에 커다란 창 3개를 내 섬을 하나씩 담았다. 안에 있어도 외부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자 했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문제는 경사지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였다. 함께 땅을 방문한 건축주와 건축가는 한 가지 큰 방향에 합의했다. “여기서는 최소한의 건축 행위만을 하자”는 것. “섬 최남단에 향일암이라는 해돋이 명소가 있는데, 이 건물은 그곳을 향해 가는 해안도로 중간에 있어요. 이 해안도로를 따라 드문드문 펜션이나 카페가 생기는 추세인데 저희 눈엔 섬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 거죠. 이곳의 지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마치 원래 있었던 것 같은 건물을 짓기로 했습니다.”

건축가는 경사지를 메워 그 위에 2층짜리 건물을 올리는 대신, 경사지에 건물 절반이 파묻히는 지하 1층, 지상 1층으로 구성된 건물을 설계했다. 덕분에 도로에서 본 건물은 엎드린 듯 납작하다. 재료조차 검은색 전벽돌이라 마치 긴 벽을 보는 듯도 하다. 천왕산 끝자락이 남해 바다와 연결되는 지점에 “붉거나 흰 건물이 불쑥 올라오지 않게” 하려는 의도다.

카페를 돌아 들어오면 터지는 감탄사

온실 유리 천장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이 실내를 환하게 밝힌다. 온실은 식물의 생명력을 좋아하는 건축주 아내의 아이디어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온실 너머 반대편 카페 공간은 아예 지붕을 없애 외부 공간으로 만들었다. 파노라마 창문은 손님들에게 가장 인기 좋은 포토존이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숨죽였던 기세는 건물 옆의 계단을 내려와 지하 카페로 들어오면서 터져 나온다. 두 개 층을 하나로 터서 천장고가 6m에 달하는 공간의 웅장함은 바깥의 소극적인 태도와는 딴 판이다. 대놓고 골강판을 자랑하는 지붕과 일부러 마감을 덜 한 콘크리트 벽, 그리고 이태원 빈티지 가구점에서 들여온 낡고 편안한 소파와 테이블, 젊은 작가들의 거친 작품은, 서울 ‘핫’한 거리의 카페들을 연상케 한다. 여기에 온실 유리천장을 통해 들어온 지상의 마른 햇볕이 공간 전체를 환하게 밝힌다.

“카페가 지하가 아니라 지상에 있었다면 시골의 땡볕과 추위를 그대로 견뎌야 했을 겁니다. 무엇보다 지하지만 지상과 같은 느낌의 공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하와 지상의 경계,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흐리는 일은 설계 내내 가장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건축가는 바다를 향해 전면창이나 다를 바 없는 큼지막한 창문을 3개 냈다. 창은 액자처럼 3개의 섬을 하나씩 담는다. 온실 너머 반대편 카페 공간은 아예 지붕을 없애버렸다. 바람, 햇볕, 소리, 심지어 비와 눈까지 그대로 들어온다. 시야각이 180도에 이르는 파노라마 창은 손님들이 가장 즐겨 찾는 포토존이기도 하다.

“서울 시내에서 카페를 설계할 땐 인테리어 외엔 얘기할 게 별로 없지만 여긴 다르잖아요. 도심지에서 보기 힘든 수려한 경관을 최대한 즐기기 위해, 안에 있어도 밖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자 했습니다.”

건축주의 집. 열 평이면 충분하다는 말에 따라 침대, 주방, 화장실로만 이뤄진 단출한 공간을 꾸몄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반대편에서 본 건축주의 집. 여기서도 창문을 통해 남해 앞바다를 내다볼 수 있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건물 한쪽엔 건축주의 집이 있다. 침대, 주방, 화장실, 작은 드레스룸만 갖춰진 단출한 공간으로 “열 평이면 충분하다”는 건축주의 뜻에 따른 것이다. 요즘 건축주는 월화수목은 (경기 성남) 판교의 주택에서 지내고, 금토일은 여수에 내려와 이 집에 머물며 직원들과 함께 커피를 내린다.

난생 처음 조직을 벗어나 자신의 공간을 꾸미고 새로운 사람들을 맞은 지 어느덧 6개월여가 지났다. 건축주는 어떤 마음일까. 그는 “카페를 돌아 들어온 사람들이 터뜨리는 감탄사를 듣는 게 가장 좋다”고 말한다. “내려오면 도로 쪽에선 안 보이던 뷰가 펼쳐지잖아요. ‘예쁘다’ 한 마디 들을 때마다 미소가 지어지죠. 처음 저희가 이 땅을 보고 느꼈던 평화로움을 여기 오는 사람들도 함께 느꼈으면 좋겠어요.”

온실 쪽 출입구. 폴딩도어를 달아 날씨가 좋은 날엔 외부 환경을 더 많이 끌어 들일 수 있게 했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온실 너머 반대편 카페 공간. 뒤쪽의 2층 공간이 건축주의 집이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아직 먼 미래지만 이곳은 돌산도의 문화공간이 될 가능성도 품고 있다. 조경빈 건축가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에 참여해 시공 중인 공간을 예술인들에게 빌려주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물론 건축주도 ‘오케이’했다. “뮤지컬 배우, 연출감독 등 여기서 예술활동을 펼칠 작가들이 이미 확정됐어요. 지금 구상은 건축을 하면서 부딪친 좌절이나 변경된 것들을 영상으로 담는 작업을 해볼까 하는데, 어떻게 될진 모르죠. 이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돌산도의 지역 문화에 작은 공헌을 하는 장소가 됐으면 합니다.”

비스토니 다이어그램. 필동2가 아키텍츠 제공

여수=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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