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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권 발행 규모 年 11조원 넘어… “규제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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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권 발행 규모 年 11조원 넘어… “규제 필요”

입력
2017.11.06 04:4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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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모바일, 선불카드 등

민간 자율로 발행돼 당국 통제 밖

발행자 파산 땐 구매자들 피해

시장가격 왜곡, 뇌물 활용 부작용

상품권법 부활 목소리 커져

“시장 자율 훼손, 수요 위축” 지적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1년에 11조원 이상 발행되는 상품권이 갖가지 ‘잡음’을 내면서 정부가 민간의 상품권 발행을 다시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시장 가격을 왜곡시키는데다가 뇌물이나 비자금 사건에도 단골손님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품권을 어느 부처에서 담당해야 할지 모호한 데다가 규제가 시작되면 자칫 시장의 자율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잖다.

5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심기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각종 상품권 발행 규모는 적어도 11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우선 국세청(인지세), 기획재정부(전자수입인지), 조폐공사 등에서 파악하고 있는 지류 상품권(종이형태를 가진 상품권)만 지난해 9조6,457억원이 발행됐다. 여기에 커피ㆍ음료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모바일 상품권(5,000억원), 사용대금을 미리 내고 물건을 살 수 있는 선불카드(1조2,000억원) 등의 발행액 추정치를 더하면 총 11조3,457억원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 한국은행이 조폐공사로부터 넘겨 받은 실물 화폐 규모(20조1,775억원)의 절반에 달한다. 이러한 대규모 유동성이 정부와 통화 당국의 통제 밖에서 창출되고 있는 셈이다.

시장에서 화폐, 수표, 카드 등에 이어 제4의 지급결제수단이 된 상품권은 1999년 규제 완화 차원에서 상품권법이 폐지된 후 민간에 의해 자율적으로 발행ㆍ유통되고 있다. 인지세(재산에 관한 권리의 창설ㆍ이전 등을 증명하는 문서에 매기는 세금)만 내면 누구든 상품권을 제한 없이 발행할 수 있다.

그러나 상품권 거래가 정부 개입이 없는 자율 거래가 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과 잠재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50만원권이나 100만원권 등 고액의 상품권이 제한 없이 유통되고 있는데다 누구나 현금화(상품권 깡)를 할 수 있어 지하경제 규모만 더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태환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간사는 “상품권 발행자가 파산하면 상품권을 보유한 소비자들에게 그 피해가 고스란히 전가된다”며 “최근 제화업체 에스콰이아의 경영난으로 시중에 발행된 상품권이 휴지조각이 될 뻔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형지가 에스콰이어를 인수하며 이러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유사한 사례는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다.

무기명 유가증권인 상품권이 거의 현찰처럼 뇌물이나 로비자금으로 쓰이는 경우도 잇따르고 있다. 실제로 부산 엘시티 비리 사건에선 수억원의 상품권이 검은 돈으로 활용됐고, 대우조선해양과 관련한 청탁에서도 어김 없이 상품권이 등장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상품권법을 부활시켜 발행자는 자본금과 매출액 등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추도록 하고, 소비자 피해 구제를 위해 공탁(손해 배상 담보를 위해 금전ㆍ유가 증권등을 맡기는 것) 또는 채무지급 보증계약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채이배(국민의당) 홍익표(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이러한 내용이 담긴 ‘상품권 유통질서 확립 및 상품권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한 상태다.

그러나 어느 부처에서 규제 칼자루를 쥘 지가 문제다. 지급결제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만큼 금융위원회가 맡는 게 맞을 것 같지만 상품권을 주로 발행하고 있는 곳은 금융기관이 아닌 백화점, 정유사, 전통시장 등이다. 그렇다고 산업자원부가 상품권 발행을 규제하는 것도 어색하다. 공정위가 담당하게 되면 상품권을 지나치게 규제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

아직 상품권의 폐해가 크지 않은데도 굳이 20년 전으로 돌아가 규제를 할 필요까지 있느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상품권 발행에 제동이 걸리면 자칫 관련 시장의 수요까지 위축될 수도 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19일 기재부 국정감사에서 상품권 규제 미비 지적에 대해 “부처 간 협의를 시작하는 방향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기재부 관계자는 “공정위, 금융위, 기재부 등 누가 감독권을 행사하는 것이 효율적일 지 관련 연구 용역 발주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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