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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27)정주영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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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27)정주영과 나

입력
2002.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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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지 않은 정치인생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지난해 작고한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과의 인연부터 언급해야 한다.

1991년 11월 아들 창원(昌元)을 저 세상에 보낸 나에게 “인생을 바꿔보라”고 권유한 사람이 바로 정 회장이었다.

92년 3월24일 내가 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을 때 “주일이, 당선될 줄 알았어”라며 누구보다 기뻐한 분도 정 회장이었다.

정 회장과의 인연은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6월21일 친구 박종환(朴鍾煥) 감독이 청소년축구 4강 신화를 이루고 귀국한 날이다.

나 역시 미국ㆍ캐나다 순회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하루 전인 20일 귀국해 있었다.

금의환향한 박 감독과 어린 선수들을 위한 환영만찬에서 나는 처음 정 회장을 만났다.

당시 정 회장은 대한체육회장이었다. 누군가 나를 정 회장에게 소개했다. 그때만 해도 정 회장은 내가 자기와 같은 강원도 출신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나 역시 평소 그를 재벌회장으로서 존경하고 있을 뿐 단 한번도 사적인 자리에서 만난 적이 없던 터였다.

그는 나를 보자 “강원도에서 인물이 났구나”라며 무척 반가워 했다.

“강원도가 물이 좋아 그런 거야. 박종환도 있고 이주일도 있고. 하여간 기분 좋다. 앞으로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 내게 말해”라고도 했다.

그 이후 정 회장은 공식 행사나 사적인 술자리가 있을 때면 자주 나를 불렀고 우리는 금세 절친한 동향 선후배가 됐다.

정 회장은 나를 ‘주일이’, 나는 정 회장을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당시 내 속마음을 솔직히 말한다면 좀 부끄럽다. ‘돈 많은 고향사람을 만나다 보면 용돈도 얻고, 현대 자동차와 아파트도 싸게 살 수 있겠지’ 하는 게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특히 정 회장이 술이 많이 취해 있을 때면 그 바람은 더욱 커졌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 내가 정치인이 되기 전까지 그로부터 단 100원도 받은 적이 없다.

술 상무 노릇을 끝내고 잔뜩 기대를 하고 있으면 언제나 이렇게 말했다. “수고했어. 이제 그만 가봐.”

그런데도 정 회장은 언제나 “어려운 일 있으면 말해. 내가 도와줄게”라고 했다.

“시간 있으면 서산농장에 내려와서 쌀 갖다 먹어”라는 말도 많이 했다.

내가 체면이 있지, 어떻게 ‘용돈 좀 달라’ ‘쌀 좀 달라’고 그럴 수 있나. 알아서 해 줘야지…. 남자 연예인 중에서 그에게 용돈 받은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어쨌든 정 회장은 10년 가까이 나를 친동생처럼 대해줬다.

98년 현대정유 공장을 서산농장에 지을 때는 “나무들이 너무 아깝다. 주일이가 평소 나무를 좋아하니 캐가라”고 말했다.

지금 분당 집 정원에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는 그때 서산농장에 가서 캐온 것들이다.

처음에는 30그루 정도 가져왔는데 지금은 4그루만 남았다. 2년 동안 잘 버티더니 정 회장이 아프기 시작하자 나무들도 시들어버렸다.

91년 11월22일 한양대 부속병원 영안실에 마련된 아들 장례식장에서 정 회장이 이렇게 말했다.

“주일이, 정치 한번 해봐. 그러면 아들 생각도 잊을 수 있을 거야.”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러죠”라고 대답했다.

정치를 해보라는 말을 현대그룹의 문화센터에서 강사 일을 맡아보라는 권유 정도로 여겼던 것이다.

정 회장의 통일국민당 창당이 나와 어떤 상관이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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