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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 아빠 떼어놓자 이번엔 엄마가… 손 못쓰는 '법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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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 아빠 떼어놓자 이번엔 엄마가… 손 못쓰는 '법의 한계'

입력
2015.08.09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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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중 한 명 가해자인 경우

나머지 가족들 쉬쉬하며 방관

전체 심리검사·상담 의무화해야

한 해 접수건수 1만7000여건

상담원은 겨우 480여명 그쳐

별도 예산도 없어 관리 역부족

2013년 10월 초등학교 2학년인 의붓딸을 2년이 넘게 폭행한 끝에 끝내 숨지게 한 ‘울산 계모 사건’. 이 사건을 계기로 제정된 아동학대 특례법이 다음달 시행 1년을 맞는다. 특례법은 가해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하고 격리조치를 할 수 있는 제3자의 범위를 확대하는 등 학대아동 보호에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보호시설에 맡겨졌다 집으로 되돌려져 친엄마에게 희생된 서울 은평구 증산동 허군의 사례처럼 가해가족의 재학대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가해가족 재학대 막을 방안 여전히 허술

특례법은 피해아동의 상황이 긴급할 경우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뿐 아니라 출동경찰이 격리를 요구할 수 있는 등 가해부모의 손에서 아동을 떼어놓을 수 있도록 초기조치를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가족들의 재학대를 막을 조치는 담고 있지 않다. 원가정으로 돌아갔을 경우 허군처럼 다른 가족에 의해 2차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허군은 아버지가 폭력으로 신고되면서 격리조치를 통해 아버지의 학대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당국의 안이한 판단과 허술한 제도 때문에 어이없게도 엄마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허군을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는 이웃 상인 A(66)씨는“아이가 배가 고파 자지러지게 울어도 엄마는 먹을 것을 전혀 주지 않았다. 비쩍 말라 기저귀만 차고 돌아다니는 아이가 불쌍했다”고 증언했다. 특례법에 따르면 아동학대자가 검찰에 기소되면 법원은 범죄 정도에 따라 보호처분을 내릴 뿐 해당 가정의 다른 가족들에 대해 내릴 수 있는 조치는 없다. 허군과 이웃해 살았던 한 60대 이웃도 “아이가 자꾸 우니까 옆집 이웃이 항의를 했고 아이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아 아이를 다그치는 과정에서 끔찍한 짓을 저지른 것으로 안다”며 “엄마가 여러모로 아이를 키우기에 적합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전했다. 굿네이버스의 김정미 아동권리사업 본부장은“학대가 발생하면 다른 가족구성원들도 이에 영향을 받아 심신이 건강하지 않은데 치료가 없다면 다른 가족에 의한 재학대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며 “가정학대가 일어난 가정은 폐쇄적인 성격을 띄는 곳이 많아 의무적으로 심리치료나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서울가정법원의 한 관계자는 “아동학대 사건 특성상 부모 중 한 명이 가해자인 경우 나머지 부모나 가족들 역시 학대를 방관했을 가능성이 큰 만큼 전체 가족이 심리검사나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호기관보다 안이한 경찰조치

특례법이 시행되면서 아동학대를‘가정문제’로 치부해왔던 경찰의 시각이 어느 정도 교정됐다고 하지만 개입에 여전히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의 한 상담원은 “수사기관 입장에는 아동학대로 입건할 정도라고 보지 않지만 보호기관의 눈으로는 아동학대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경우가 자주 있다”며 “전문기관의 상담원은 아동을 일시적으로 격리하는 응급조치를 할 수 있지만, 경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는 한 임시조치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동학대 업무를 맡고 있는 한 경찰 관계자도 “경찰은 여성ㆍ청소년 비행 등 광범위한 업무를 맡기 때문에 보호기관보다는 사건 판단에 전문성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실토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특례법이 시행된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상담원들이 취한 조치 178건중 76.4%인 136건이 피해아동의 격리조치였던 반면 경찰 조치 143건중 격리조치는 78건으로 54.5%에 지나지 않았다. 경찰이 아동보호전문기관보다는 상대적으로 아동학대에 대한 소극적인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지역 민간아동보호기관들에 아동학대 조사와 조치 등의 업무를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가 공권력을 통해 적극적으로 예방,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영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영국과 미국 등에서는 아동학대 신고접수부터 사후 관리를 지방정부 공무원이 담당하도록 돼있다”며 “장기적으로는 민간 위탁 대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맡기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력과 예산 부족도 여전

특례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아동학대를 막을 시설, 인력 부족 문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아동학대 신고 접수 건수는 1만7,000여건으로 전년에 비해 40% 증가했다. 하지만 전국의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은 480여명 정도다. 아동의 인구 수가 한국과 비슷한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 상담사가 5,000여명에 달한다. 한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의 상담사는 “인력 부족으로 주말도 없이 주 70시간 근무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하루에 가정 방문은 커녕 전화 한 통도 하기가 쉽지 않아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고 털어 놓았다. 아동학대의 재발을 막기 위해 꼭 필요한 학대가정의 사후관리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예산부족도 지적된다. 전문가들은 현재 55곳인 아동보호전문기관과 피해아동 쉼터를 2017년까지 100곳으로 늘려야 최소한의 상담과 초기조치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내년에만 24곳의 아동보호기관 확충이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이에 필요한 예산 413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90억원의 예산만 확보됐다. 특히 관련 예산은 법무부의‘범죄피해자보호기금’에서 나와 유동적이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장은 “벌금수입으로 이뤄지는 범죄피해자기금 특성상 예산이 크게 늘긴 어렵다”며 “아동학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고려한다면 별도 예산 편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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