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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용산, 잊고 있었다

입력
2017.07.2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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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용산참사를 다룬 소설과 다큐멘터리를 연이어 접했다. 2009년 1월 20일 새벽의 일이었다. 어제 같은데 8년의 세월이 지나 있었다. 잊고 있었다는 말이겠다.

소설집 <가시>(2017, 클)를 읽다 만난 김정아의 단편 ‘마지막 손님’은 참사가 일어나기 직전의 시간으로 돌아가 철거가 진행 중이던 그곳 재래시장 세입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30년 넘게 시장에서 국숫집을 해온 선례라는 여성은 법적 근거 미비로 턱없이 부족한 보상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텅 빈 시장에서 그이의 국숫집만 영업을 하고 있는데 철거 용역을 하는 이들이 새참처럼 국수를 찾으면서 남아 있게 된 것이다. 남일당(소설에서는 ‘행운당’으로 변용되어 나온다) 옥상에 망루가 올라가는 모습이 보이고, 건물 계단에서는 ‘용역들’이 폐타이어를 태우며 위협하고 있다.

선례 씨는 국숫집 한쪽에서 커피를 팔아온 남순씨와 함께 망루의 사람들에게 국수를 말아 올리기로 마음을 먹는다. 소설은 여기서 끝나는데 국수는 망루의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해졌을까. 인상적인 삽화가 하나 더 있다. 전날 용역들에게 내놓은 국수의 국물이 맹물이었다. 세입자대책위와 짜고 골탕을 먹이려 했다며 난리가 났다. 듣기는 하지만 말은 못하는 선례 씨를 향해 험한 욕이 쏟아졌다. 30년 장사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렇게 정신줄을 놓다니 선례 씨는 그 자리에 그만 주저앉아버렸다. 골탕이라니, 누가 누구에게 골탕을 먹인단 말인가.” ‘용역들’ 역시 누군가의 대리인들이다. 그때의 용산뿐이랴만, 재개발 철거의 현장에서 마음의 뿌리를 잃어버리는 순간이 아프게 포착되어 있다.

김일란ㆍ이혁상 감독의 다큐멘터리 ‘공동정범’(2016)은 용산참사의 진실을 경찰특공대의 증언과 재판 과정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규명하려 한 다큐 ‘두 개의 문’(김일란ㆍ홍지유, 2011)에 이은 후속 작품이다. ‘두 개의 문’을 보면 경찰특공대가 망루의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한 가운데 무리하게 투입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변호사의 반대신문 과정에서 어렵게 입을 연 특공대원은 진압 작전은 보류되는 게 맞았다는 판단을 내놓는다. 그러나 재판은 사망한 경찰특공대원 1명을 피해자로 두고, 범죄의 주범을 특정하지 못한 가운데 나머지 망루의 농성자 전원을 살인의 ‘공동정범’으로 기소한 검찰의 구도대로 진행되었다.

다큐 ‘공동정범’은 기소되어 5년여 형을 살고 나온(옥상 난간을 붙잡고 있다 떨어진 한 분은 심한 부상으로 집행이 유예되었다) 다섯 농성자들의 현재 시간에서 시작한다. 망루의 불지옥에서 살아나온 과정을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눈을 뜨니 그들은 ‘살인자’가 되어 있었다.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겠는가. 인터뷰는 시종 조심스러웠지만 거기 그이들 앞에 카메라를 두어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큐는 힘겨워 보였다. 기억은 조금씩 흔들렸다. 망루가 갑자기 불길에 휩싸이는 당시의 현장 동영상이 다큐 중간중간 계속 나오고 있었지만, 그 순간의 진실을 그이들의 기억으로 복원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그들은 너무도 고통스러운 피해자들이었다. 그이들의 얼굴, 어렵게 떼놓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지옥의 시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예상치 못한 대목에서 가슴을 아프게 한 사실은 살아남은 농성자들 사이의 오해와 갈등이었다. 다큐의 후반에 이르면 조금씩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모습이 보인다. 이 갈등을 마주하기로 한 것은 다큐의 어려운 결정이었으리라. 다행스럽게도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용산참사 진상조사위원회가 새로이 꾸려질 거라는 소식이다. 촛불 민의의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망각과 싸워온 이들의 힘일 테다.

정홍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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