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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대통령의 이혼

입력
2016.12.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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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변호사에게 특이한 혼전계약서에 대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신혼부부는 결혼 전 ‘일주일에 3일은 같이 살고, 4일은 따로 산다’는 내용을 조건으로 하는 혼전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 기간도 정해져 있었고, 아내의 용돈과 생활비는 남편이 대주는 것도 포함됐다. 결혼 이후 이들은 주말에만 함께 있었고, 평일에는 각자 다른 장소에서 살았다. 자녀는 없었다. 아들 부부의 행태를 수상히 여긴 남편의 아버지가 아들을 추궁했고, 황당한 혼전계약서 내용을 뒤늦게 알게 됐다. 아버지는 변호사에게 아들의 이혼 수속을 요청했다.

▦ 아내에게 남자가 여럿 있었고, 남편이 아내를 너무 좋아한 탓에 불리한 결혼 조건을 받아들였지만 뒤늦게 후회했다. 하지만 통상 결혼보다 이혼이 훨씬 어렵다. 혼전계약서가 사회적 통념과 인륜에서 현저히 벗어난 것이라도 막상 상대방이 버티면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양측이 합의한 결혼이라 법정에서 다퉈 봐야 한다. 단지 아내는 남편 명의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어서 행실에 대한 추적이 수월했다. 아내는 새벽 2~3시까지 남자들과 통화를 하며 불륜을 즐긴 것으로 밝혀졌고, 결국은 합의 이혼에 동의했다.

▦ 간통죄가 폐지되면서 혼전계약서 작성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졌다. 미국의 할리우드 스타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혼전계약서가 우리 사회에 슬금슬금 도입되고 있다. 그럼에도 실제 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한다. 최근까지 공증을 받은 혼전계약서 작성 건수는 연 100건 미만이다. 하지만 결혼정보회사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혼전계약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70% 이상이 수긍했다. 혼전계약서를 작성했다고 법적 효력이 100%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법원에서 중요한 참고자료로 인용될 가능성은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일부 해외 언론이 “나라와 결혼했다던 박 대통령이 이혼 수속을 밟게 됐다”고 비아냥거렸다. 박 대통령이 국민과 ‘5년’간의 혼전계약을 어기고, 최순실과 수상한 ‘불륜’을 저지르다 탄핵을 당한 꼴이다. 태블릿PC가 아니었다면 증거를 잡기 쉽지 않았을 테다.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문고리 3인방이 몰랐을 리 없다. 햄릿은 ‘악행은 대지가 은닉해도 사람 눈에 탄로 나는 법’이라 했다. 권력을 사유화해 국민을 실망시킨 대가다. 불륜이 드러났으면 이혼은 빠를수록 좋다.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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