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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못다 한 아이들의 목소리

입력
2017.01.01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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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크라우드 펀딩을 했었다. 현실을 기록하는 글쓰기가 얼마나 깊게 사람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지, 나아가 그 기록이 현실 속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시도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간 응급실에서 보아왔지만 너무 처절해서 차마 쓰지 못 했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써냈다. 기부처도 아이들로 명시했다. 사람들은 그 기구한 이야기를 보고 다양한 반응을 보여 주었으며, 대부분 깊이 공감해 주었다. 다행히도 덕분에 목표 금액의 세 배가 넘는 액수를 모을 수 있었다. 이것이 현장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그 중 가장 화제가 된 글은 아동학대에 관한 글이었다.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2개월 된 아이가 응급실에 실려 왔는데, 머리가 찌그러져 있었고 전신이 부러져 있었다. 반복된 구타로 보였다. 같이 온 엄마는 정신지체였고, 교회 사람들이 발견해서 데리고 왔다. 반복된 추궁에 엄마는 동거남이 리모컨으로 아이의 머리를 때리고 발길질했노라 털어놓았다. 경찰의 소환을 받고 온 동거남은 자기 자식이 아니니 아동학대도 아니라고 뻔뻔하게 변명했고, 중환자실에 누운 아이는 평생 두유밖에 먹지 못해서 처음 맛보는 분유를 게걸스럽게 먹었다.

이 글을 보고 분개한 많은 사람들의 질문을 받았다. 실제 이야기인지, 맞다면 아이는 건강한지, 피의자는 처벌을 받았는지 등이었다. 나는 아동학대라는 주제의 특성상 이 질문에 즉시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는 실제 있었던 일이 바탕이 된 글이었다. 이 구타를 당한 사람도, 행한 사람도 실제로 존재했다.

펀딩이 끝나고 나는 모금액으로 이 아이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담당 재단을 찾았다. 아이는 부모의 손을 떠나 위탁 기관에서 정부의 보조로 생활하고 있었다. 그 외에 아이는 병원에 꾸준히 다녀야 했는데, 너무 심한 구타로 두상이 비틀어져 두상을 교정하기 위한 치료였다. 그 어린 나이에 이런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인생이 있었다. 나는 글이나 다른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끔찍함을 느꼈고, 이 치료비를 대기로 했다.

그리고 매일 아동학대를 접하는 재단 관계자들에게 현장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동학대는 모든 사람이 가장 끔찍한 행위임을 인정하는 범죄다. 하지만 가장 접근이 어려울뿐더러, 세상에 알려지기 어려운 범죄이기도 하다. 가끔 매체에 밝혀지는 아동학대의 이야기는 사람들을 분개하게 하지만 언제나 그뿐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구타를 당했다고 밝히지도 못하며, 오히려 아이의 신원이 알려지거나 구타의 정도가 알려지면 피해자의 인생은 더욱 비참해질 수 있다. 아이는 좁은 세계에서 겪고 있는 불행함이 세상의 전부라고 알며 끔찍한 현실을 감내해야 한다. 심지어 대부분의 가해자는 부모다. 학대의 피해자가 되어 부모와 멀어지면 아이를 기다리는 것은 또 다른 비참함이다.

아동학대는 세상의 인정에서 멀어져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실상이 구체적으로 알려지기 어려우며, 돕는다는 사실조차 밝히기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이다. 기부 사업에서 주체가 되어야 할 기업체는 음지의 고통받는 아이들을 돕는 데 인색하고, 개인은 접근하기조차 힘들다. 이 기관에서는 이러한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직접 현장에 출동하는 일부터, 아이를 데려와 돌보고, 후원금을 마련하며, 위탁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런 일을 사회의 누군가 해야 했다. 내가 해야 했으나 손이 닿지 못해 이 사람들이 대신하고 있는 일이었다. 나는 이 재단에 내 사비를 보탠 나머지 펀딩 금액을 기부하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엔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평생 돌봐야 할 것이 더 늘어났으니까. 하지만 이 때문에 조금 더 치열하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세상 입을 열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몫까지 겸허하게 살아가야겠다고, 나는 다짐했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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