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차벽을 제거해주십시오. 차벽을 제거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는 걸 명심하세요. 5분 내로 차를 치우지 않으면 차벽 위로 올라가겠습니다.”(탄핵 반대 측)
1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을 두고 촛불집회(찬성)와 태극기집회(반대)가 열린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는 팽팽한 긴장감에 짓눌렸다. 이들이 각자 집회를 시작한 이래 가장 밀접한 거리에서 만나는 상황을 피하고 혹시 모를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경찰이 촘촘한 2중 차벽으로 양측을 분리하고 나서면서 큰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차벽이 양측을 나눈 거리는 불과 5~10m에 불과했다.
대통령탄핵기각을위한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 등 보수단체들이 중심이 된 이날 ‘제15차 탄핵무효 애국집회’에는 “총결집을 하겠다”는 공언대로,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탄핵 반대 지지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광화문광장 앞 세종대로사거리를 중심으로 남대문 쪽 방향 거리엔 태극기를 손에 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탄기국 측은 “전국 각지에서 참가한 인원이 최대 500만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대다수가 50대 이상의 중ㆍ장년이었지만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도 여럿 눈에 띄었다.
참가자들은 광화문광장을 둘러싸고 헌법재판소와 청와대 방면으로 나눠 행진하면서 탄핵 반대 목소리를 한층 높였다. 이들은 서울경찰청 앞 내자동사거리를 거쳐 청와대 앞 신교동사거리까지 태극기와 성조기 등을 들고 행진하면서 “탄핵무효” “탄핵기각” “국회해산” 등 구호를 외쳤다.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이 청와대 앞으로 행진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집회에 앞서 주최 측에서는 “충돌이나 큰 불상사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실제 현장에선 이런저런 소란이 이어졌다. 헌재 방면으로 향하다 경찰 차벽에 가로막힌 참가자들은 경찰을 향해 “차벽을 치우라”고 외치며 욕설을 했다. 일부는 차 위로 올라가 태극기를 흔들다 경찰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이모(51)씨는 집에서 왼손 새끼손가락을 자르고 붕대로 감은 채 집회에 나왔다가 이를 목격한 경찰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경찰은 이씨로부터 손가락 자해에 사용한 흉기 및 ‘나는 멈추지 않는다’고 쓴 혈서를 압수했다. 이씨는 “좌파가 너무 심해서 그랬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주최 촛불집회는 태극기집회보다 3시간 늦은 오후 5시부터 시작됐다. 3·1절 의미를 되새기고자 이날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이례적으로 태극기를 지참했다. 다만 주최 측은 보수집회와 구분을 위해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노란 리본을 달아달라”고 주문했다.
앞서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집회를 진행한 후 촛불집회에 참석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박근혜 정부는 한마디 말도 없이 2015년 12월 28일 협상(한일 위안부 합의)했다. 있을 수 있는 일인가"라며 "박근혜를 탄핵하고, 튼튼한 대한민국을 지키는 후손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넘겨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행진 이후 다시 세종대로사거리로 돌아와 오후 8시까지 집회를 이어갈 방침이던 보수단체는 늦은 오후부터 비가 내리자 2시간여 앞당긴 오후 6시쯤 집회를 마쳤고, 경찰도 차벽을 풀었다. 30만 촛불인파(주최측 추산)는 광화문광장 집회를 마친 뒤 “박근혜 구속만세” “탄핵인용 만세” 등을 외치며 청와대 앞까지 행진하고 8시쯤 흩어졌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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