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성향 총리 발탁한 ‘결단’
인선 의미 전혀 부각받지 못해
전날까지 “비서실장 우선 인선”
기습 개각하고 배경 설명 없어
밀실 통치 위기에도 ‘마이웨이’
“불통 여전” 더 심한 궁지 몰려
박근혜 대통령은 여전히 불통이었다.
박 대통령은 2일 노무현정부 인사인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국무총리에 발탁하는 ‘결단’을 하고도 한층 사나워진 비판에 직면했다.‘대통령 부적격 판정’을 받은 박 대통령이 권한을 최대한 내려놓아야 한다는 민심을 무시한 채 여야와 전혀 협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개각을 발표한 것이 거센 역풍을 불렀다. 때문에 ‘야당 성향 총리 인선’의 의미는 전혀 부각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이날 새누리당 지도부에도 개각 내용은 물론이고 개각을 한다는 사실조차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 청와대 참모들 사이에도 정보가 제대로 공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으로부터 탄핵과 하야를 공개적으로 위협받는 처지에 몰렸음에도 ‘마이웨이 통치 스타일’을 조금도 바꾸지 않은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평소 대로 인사 내용의 철통 보안 유지에만 신경 쓴 게 아닌가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달 27일 부산 방문 이후 6일째 외부 일정을 중단하고 청와대에만 머물러 있는 박 대통령이 여론을 정확히 전달 받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청와대는 이날 오전 정연국 대변인을 통해 “박 대통령이 김병준 총리와 임종룡 경제부총리, 박승주 국민안전처 장관을 지명했다”고 덜컥 공개했다. 청와대는 1일까지 “공석인 대통령비서실장을 우선 채우고 총리 후보자를 인선한 뒤, 총리 후보자와 상의해 순차 개각을 하겠다”고 설명했지만 이를 갑자기 뒤집은 것이다. 기습 개각에 대한 배경 설명도 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특히 ‘책임총리 임명과 거국중립내각 구성’ 등 국정 정상화를 위한 대통령 권한 분산 방안을 수용할 것인지 여부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정 대변인의 개각 브리핑에선 책임총리나 거국중립내각 등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때문에 박 대통령이 아직도 정국 주도권에 집착해, 거국중립내각 요구를 물리치고 개각을 통한 국면 전환을 시도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일방통행 개각에 자극 받은 야당들이 ‘개각 철회 요구ㆍ국회 인준 절차 거부’ 로 맞서면서 청와대는 더 심한 궁지에 몰렸다.
이에 일부 참모들은 언론을 통해 “박 대통령이 김 총리 후보자에게 내치 대통령에 가까운 책임총리를 맡기고 2선 후퇴를 한다는 뜻”이라고 비공식 설명을 내놓았다. 그러나 참모들의 설명이 박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뒤늦게 “내치 대통령이나 2선 후퇴 같은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결국 박 대통령이 직접 설명을 내놓아야 대통령과 총리 권한 논란이 정리돼 국정 정상화를 시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 참모들은 “박 대통령이 조만간 직접 생각을 밝힐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려면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의혹과 검찰 수사 문제 등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만큼, 당분간 침묵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전망한 참모들도 있다. 참모들이 개각에 실린 박 대통령의 뜻도, 앞으로 수습 방안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청와대의 혼란스러운 처지인 셈이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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