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님. 이번 기획안 관련해서 클라이언트의 오피니언이 왔는데, 내용이 약간 부실해서 디벨롭이 필요하대요. 저희 팀이랑 일정 픽스해서 한 번 봬야 할 것 같은데…”
확실히 정상적인 문장은 아니다. 영어와 우리말이 혼재된 탓에 문장 파악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일반 직장에서 흔히 쓰는 대화임엔 분명하다. 이 대화문은 일명 ‘급여체’다. 급식을 받는 학생들이 주로 은어를 섞어 쓴다는 의미로 불리는 ‘급식체’에서 착안된 별칭이다.
문장을 풀이해 보면 클라이언트(Client)는 고객, 오피니언(Opinion)은 의견, 디벨롭(Develop)은 내용을 구체적으로 발전시키는 것, 픽스(Fix)는 조율을 뜻한다. 즉 “이번 기획안과 관련해 고객 의견이 왔는데, 내용이 부실해서 구체화가 필요하단다. 회의를 위해 우리 팀과 일정을 조율하자”는 의미다.
14일 클리앙 등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직장인들의 실무 용어를 정리한 게시물이 올라와 눈길을 끌고 있다. 제목은 “급식체만 있냐, 급여체도 있다”였다.
게시물에 따르면 윗사람의 부름에 답할 때 쓰는 “네”에도 물결표시(~)를 몇 개 붙이느냐에 따라 의미가 크게 달라진다. 예를 들면 “네~”는 ‘알겠습니다’라는 단순 응답에 가깝지만, “네~~~~~”라고 하는 건 ‘무슨 말하는지 알겠으니 제발 그만 말씀하세요’라는 반발의 의미가 숨겨져 있다.
영어와 우리말을 혼용하는 것도 ‘급여체’의 특징. 주로 영어 뒤에 “~하다”를 붙여 동사화하는 식이다. “어레인지(Arrange)하다”는 말은 미팅 등 업무 일정을 조율한다는 뜻이다. “개런티(Guarantee)하다”는 어떤 일에 대해 확실하게 보장한다는 의미다. “인발브(Involve)하다”는 어떤 일에 관여한다는 뜻이다.
연락 등을 주고 받을 때 쓰는 관용적 표현도 ‘급여체’에 속한다. “확인 후 연락 드리겠습니다”, “확인 및 검토 부탁 드립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추가 요청 있으실 경우 재회신 부탁 드립니다” 등이다. 최대한 공손하고, 정중한 어투가 특징이다.
하지만 이렇게 변형된 표현들에 대한 전문가들의 시선은 부정적이다.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우리말 번역이 어려운 전문용어의 경우 꼭 필요하면 부득이하게 써야 하나, 우리말로 옮길 수 있는 단어까지 외국어로 표현하는 건 문제”라며 “가급적 쓰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다. 양원모 기자 ingodzo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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