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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논설실장

등록 : 2016.03.07 20:00
수정 : 2016.03.07 20:00

[이계성 칼럼] 김종인의 칼춤과 안철수의 운명

등록 : 2016.03.07 20:00
수정 : 2016.03.07 20:00

야권통합 제안은 안철수 죽이기

일여다야 총선구도 바꾸기 공세

잦아든 안풍 다시 불 수 있을까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6일 오전 마포 당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제안하는 야권 통합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거부입장을 거듭 확인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요즘 정가에 벌어지는 일들은 마치 무협지 장면 같다. 새누리당의 친박ㆍ비박 간 공천 싸움도 칼날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지만 야권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통합 문제를 놓고 벌이는 결투는 살벌하기 이를 데 없다.

더민주의 노검객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구사하는 공격은 한 수 한 수가 거칠고 매섭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가 이리저리 방어를 한다고 했지만 내공 차는 어쩔 수 없어 이미 상당한 내상을 입었다.

4ㆍ13 총선에서 새누리당 압승 저지를 위해 힘을 합치자는 명분은 쉽게 거부하기 어렵다. 하지만 안철수 입장에서는 절대 받을 수 없는 제안이다. 받아들이는 순간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나기 때문이다. 안 받거나 못 받을 줄 뻔히 알면서도 함께 춤을 추자고 손을 내민 의도는 분명하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얼마 전 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와 관련해 구사한 어법을 빌리면 ‘노장무검 의재안공’(老莊舞劍 意在安公)이다. 안 대표는 “비겁한 정치공작” “임시사장” 등으로 반격을 가했지만 물러설 김 대표가 아니다.“대선후보 욕심”“감정과 이기심에 사로 잡혀” 등 더욱 예리한 초식으로 안 대표의 약점을 파고든다.

안 대표 말마따나 김 대표는 주식회사 더민주의 임시사장이거나 바지사장이다. 법정관리회사의 관리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순식간에 더민주를 현란한 칼춤으로 확실하게 장악했다. 친노운동권을 공천에서 배제하는가 하면 대의명분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그게 밥 먹여주냐”고 단칼에 자른다.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던 근래의 야당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광경이다. 그의 과단성 있는 리더십과 스타일은 요즘 정가는 물론 시중의 최대 화제다.

공천 문제 등에 대한 비상대권까지 거머쥔 김 대표는 이제 일여다야(一與多野)의 총선구도 변경에 나섰다. 야권 통합 제안은 1 대 1 총선구도 만들기의 일환이라고 봐야 한다. 국민의당이 통합에 응한다면 좋지만 거부해도 손해 날 게 없다는 계산을 했을 법하다. 통합론을 놓고 내부가 크게 흔들리면서 그렇지 않아도 하락세이던 국민의당 지지도는 악화일로다. 어느새 더민주 지지도의 반도 안 되는 수준이 됐다. 안 대표 개인지지도도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철저하게 국민의당과 안 대표의 존재감을 희석시켜 총선에서 사실상의 1 대 1 구도를 만들겠다는 게 김종인 대표의 계산인 것으로 보인다.

안 대표로서는 정계 입문 이래 최대 위기다. “무조건 통합은 익숙한 실패의 길” “ 원칙 없이 뭉치기만 하면 만년 야당” 이라고 외치고, 3당 체제로 양당 기득권체제를 깨야 ‘헬조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호소하지만 반향은 크지 않다. 무엇보다도 새누리당에 과반을 넘어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할 180석, 개헌선인 200석까지 내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야권에 팽배한 게 큰 부담이다. 안 대표는 “퇴행적 새누리당에 개헌 저지선이 무너지는 결과를 국민께서 주진 않을 거라고 믿는다”고 했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이번 선거구 조정으로 야권의 핵심 기반인 호남은 전체 의석이 28석으로 줄었다. 이를 더민주든 국민의당이든 야당이 석권하고 비례대표 47석의 반을 차지한다 해도 수도권과 충청 등 나머지 지역에서 50석 이상은 얻어야 개헌저지선을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서울ㆍ경기ㆍ인천 등지에서 일여다야 구도로 선거를 치러 과연 그 정도 의석을 얻을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게 엄연한 현실이다.

단순다수대표 소선구제에서 선거연대 없이 3당 체제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3김 시대처럼 확실한 지역기반이 있는 경우라면 얘기가 다르지만 안 대표에게는 지금 그런 지역 텃밭도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을 빌어 “원칙 없는 승리보다는 원칙 있는 패배”를 택하겠다고 하지만 따를 인사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드높이 휘날리던 안풍(安風)의 깃발은 갈갈이 찢기고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사방에는 적뿐”인 광야에 외롭게 서 있는 안 대표다. 그 광야에서 살아남아 안풍에 깃발을 다시 힘차게 휘날릴 날을 기약할 수 있을까.

이계성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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