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과 양심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말했다. ‘양심은 도덕을 만들지 모른다. 하지만 도덕은 여태껏 양심의 ‘양’자 조차 만든 적이 없다.’” 기타노 다케시는 이 말을 이어받아 이렇게 썼다. “양심을 기르기 위해 도덕 수업을 하는 게 아니다. 도덕을 익히는 것은 한마디로 인생을 편하게 살기 위해서다.”
‘편하게’란 ‘막’보다는 ‘재미나게’ 쪽이다. “무언가에 제동을 거는 것이 도덕의 역할이다. 그러지 않으면 무엇을 하든 개의치 않게 되어 재미도 감흥도 아무 것도 없다. 야구든 축구든 규칙이 있어 재미가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도덕이란 삶을 재미나게 살아내기 위한 기술이니, 제발 근엄하게 ‘도덕 도덕’ 외치지 말란 얘기다.
‘위험한 도덕주의자’는 이런 후련한 얘기들이 가득한 책이다. 저자는 이름을 들었을 때 딱 떠올렸을, 우리에겐 늙은 조폭이나 양아치 역할로 각인된 ‘일본의 국민배우’ 기타노가 맞다. 그만의 화법에 걸맞게 서두에서부터 못 박고 시작한다. “도덕이 어쩌고 저쩌고 하며 떠들어대는 놈의 말은 절대 믿어서는 안 된다.”
도덕, 하면 흔히 떠올리는 18번 레퍼토리 ‘부모님을 공경하고 형제 간에 우애 있고 친구들과 잘 지내고’는 어떤가. 그건 그냥 매너일 뿐이다. 진짜 도덕은 이런 문제들이다. “일본 같은 나라가 부자인 이유는 가난한 나라가 많은 덕분이라는 사실을 언젠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인건비가 일본의 몇 분의 일 밖에 안 되는 나라가 있기 때문에 일본 경제가 유지되고 있으며 우리가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은 가난한 나라 덕분이다. 그러한 나라를 풍요롭게 해주기 위해 일본은 풍족함을 어느 정도 희생해야 한다.” 또 이런 얘긴 어떤가. “아이들에게 친구들과 사이 좋게 지내라고 할 요량이라면 국가간에도 사이 좋게 지내야 한다. 이웃나라가 군비 확장한다고 우리도 군비 증강을 하자는 정책은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것이 된다.”
그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도덕 원칙은 딱 하나다. “이 세상에 상처 받길 원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러므로 진정 내가 상처받고 싶지 않다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을 삼가자.” 그 외 도덕은 스스로 삶을 즐기는 과정에서 찾아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기타노는 무슨 사안이 터졌을 때마다 이것이 정의라는 도덕적 선언이 넘쳐나는 현상에 냉소를 보낸다. “이미 답은 나와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져라.’ 예수의 이 말을 듣고 옛 사람들은 모두 침묵했지만, 요즘은 ‘그럼 나부터’라면서 잇달아 돌을 던지지 않을까. 인터넷 세상에는 그런 놈만 잔뜩 우글거리고 있다는 생각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다.” 제 도덕을 제 인생에서 제가 찾아내는 것일 뿐이다. 인생을 재미있게 살아내는 기술인 도덕을, 남의 말 따위에 맡긴다는 건 “나의 인생을 남에게 맡기는 것과 매한가지” 아니겠는가 말이다. 읽다 보면 ‘단순한 삶 노련하게 살아내기’가 관건이라던 소설가 한창훈의 목소리가 자꾸 떠오른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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