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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한 해직PD의 행복했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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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한 해직PD의 행복했던 시절

입력
2016.07.3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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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서울 건국대에서 최승호 뉴스타파 PD가 ‘다큐 ‘자백’과 국가 그리고 공영방송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조아름기자
30일 서울 건국대에서 최승호 뉴스타파 PD가 ‘다큐 ‘자백’과 국가 그리고 공영방송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조아름기자

최승호 뉴스타파 PD는 “적어도 그때는” “당시만 해도”란 표현을 자주 입에 올렸습니다.

최 PD는 30일 한국PD연합회 등의 주최로 서울 광진구 건국대에서 열린 ‘다큐 ‘자백’과 국가 그리고 공영방송의 역할’이란 제목의 강연에서 ‘피디수첩’을 제작하던 당시의 경험으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최 PD는 2012년 MBC에서 해직되기 전까지 대표적 탐사저널리즘 프로그램인 ‘피디수첩’ 제작의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최 PD는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조작’(2005) 편을 가리켜 “공영방송 저널리즘이 최고도로 발현됐던 보도”라고 평가했습니다. “국민들이 원하는 걸 방송 할 뿐 아니라 국민이 원하지 않아도 (그들이 꼭 알아야 할) 정말 중요한 뉴스를 보도했던 사례”라고도 덧붙였습니다.

그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취재과정에서 어마어마한 압력과 우여곡절이 있었죠. 하지만 취재한 내용이 방송으로 나가는 게 막히진 않았습니다. 적어도 그때는요.”

온 국민이 황 교수의 ‘업적’에 무한신뢰와 지지를 보내던 때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보도를 당시 노무현 정권도 달가워하지는 않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공영방송 MBC를 지탱하던 국장책임제(내부구성원들의 제작자율성을 위해 국장의 책임 및 권한을 보장한 제도) 하에 회사 경영진이나 정권의 입김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시기였다고 최 PD는 회상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공약이던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던 ‘4대강 수심 6m의 비밀’(2010)을 준비하던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최 PD는 “김재철 당시 MBC 사장이 사전 시사를 요구하고 결국 ‘피디수첩 불방사태’를 초래하기 전까지만 해도 방송을 못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못 했다”며 “경영진이 제작에 간섭할 수 없다는 정신이 그만큼 엄중하게 여겨진 시기였다”고 말했습니다.

과거에도 언론인들은 정권에 타격을 주는 보도를 할 때 크고 작은 압력에 직면하지만 그럼에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 보도할 수 있다는 확신 그리고 부조리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불과 10년 전까지 만해도 존재했다는 뜻이었습니다.

현재 공영방송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을 최 PD는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공영방송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면 시청자들은 안방에서 편안하게 세상 돌아가는 정보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제가 굳이 ‘자백’이란 영화까지 만들어 국가정보원의 간첩조작 사건을 고발할 필요도 없었겠죠.” 최 PD가 만든 ‘자백’은 탈북한 뒤 서울시청 공무원이 된 유우성씨가 간첩으로 몰린 사건을 비롯해 국정원이 관여된 간첩조작의 역사를 돌아보는 다큐멘터리영화입니다. 지난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소개돼 아시아진흥기구상(NETPAC)상 등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최 PD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뉴스타파’를 가리키며 “독립언론처럼 국민들이 인터넷을 통해 열심히 찾아 들어가야만 정보를 얻는 곳에서 뉴스를 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지속되는 한 대한민국 발전은 없다”며 공영방송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강연이 끝난 뒤 “지금까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냐”는 한 대학생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최 PD는 과거 ‘황우석 사건’을 보도하던 당시를 꼽았습니다. “위인 대우를 받던 인물을 겨냥하면서 어마어마한 방해와 비판을 받았고 어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방송을 해냈죠.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진실보도를 위한 언론인들의 치열한 싸움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역사일 겁니다.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가 언론의 존재 이유인 이상 정권과의 아슬아슬한 긴장과 갈등은 언론의 숙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최 PD의 말처럼 ‘적어도 그때’는 공영방송에 대한 보도통제가 청와대 홍보수석 본연의 임무란 어불성설을 이토록 당당하게 듣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만 해도’ 아무리 입바른 소리를 하는 언론인이 밉다 한들 그것도 공영방송이 부당징계의 칼날을 이토록 노골적으로 휘두르진 않았습니다.

26년을 몸담았던 공영방송 MBC에서 해고된 한 언론인의 강연으로 주말을 보내며 암담한 공영방송의 현실을 새삼 깨달았고, 이형기의 시 한 토막을 문득 떠올렸습니다.

‘텅텅 비어 있는 여기저기에 누구에게나처럼 벌레는 운다. 행복하고 싶었던 그 시절이 실은 행복한 시절이었다. (‘불행’)’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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