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 뉴스타파 PD는 “적어도 그때는” “당시만 해도”란 표현을 자주 입에 올렸습니다.
최 PD는 30일 한국PD연합회 등의 주최로 서울 광진구 건국대에서 열린 ‘다큐 ‘자백’과 국가 그리고 공영방송의 역할’이란 제목의 강연에서 ‘피디수첩’을 제작하던 당시의 경험으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최 PD는 2012년 MBC에서 해직되기 전까지 대표적 탐사저널리즘 프로그램인 ‘피디수첩’ 제작의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최 PD는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조작’(2005) 편을 가리켜 “공영방송 저널리즘이 최고도로 발현됐던 보도”라고 평가했습니다. “국민들이 원하는 걸 방송 할 뿐 아니라 국민이 원하지 않아도 (그들이 꼭 알아야 할) 정말 중요한 뉴스를 보도했던 사례”라고도 덧붙였습니다.
그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취재과정에서 어마어마한 압력과 우여곡절이 있었죠. 하지만 취재한 내용이 방송으로 나가는 게 막히진 않았습니다. 적어도 그때는요.”
온 국민이 황 교수의 ‘업적’에 무한신뢰와 지지를 보내던 때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보도를 당시 노무현 정권도 달가워하지는 않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공영방송 MBC를 지탱하던 국장책임제(내부구성원들의 제작자율성을 위해 국장의 책임 및 권한을 보장한 제도) 하에 회사 경영진이나 정권의 입김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시기였다고 최 PD는 회상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공약이던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던 ‘4대강 수심 6m의 비밀’(2010)을 준비하던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최 PD는 “김재철 당시 MBC 사장이 사전 시사를 요구하고 결국 ‘피디수첩 불방사태’를 초래하기 전까지만 해도 방송을 못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못 했다”며 “경영진이 제작에 간섭할 수 없다는 정신이 그만큼 엄중하게 여겨진 시기였다”고 말했습니다.
과거에도 언론인들은 정권에 타격을 주는 보도를 할 때 크고 작은 압력에 직면하지만 그럼에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 보도할 수 있다는 확신 그리고 부조리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불과 10년 전까지 만해도 존재했다는 뜻이었습니다.
현재 공영방송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을 최 PD는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공영방송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면 시청자들은 안방에서 편안하게 세상 돌아가는 정보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제가 굳이 ‘자백’이란 영화까지 만들어 국가정보원의 간첩조작 사건을 고발할 필요도 없었겠죠.” 최 PD가 만든 ‘자백’은 탈북한 뒤 서울시청 공무원이 된 유우성씨가 간첩으로 몰린 사건을 비롯해 국정원이 관여된 간첩조작의 역사를 돌아보는 다큐멘터리영화입니다. 지난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소개돼 아시아진흥기구상(NETPAC)상 등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최 PD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뉴스타파’를 가리키며 “독립언론처럼 국민들이 인터넷을 통해 열심히 찾아 들어가야만 정보를 얻는 곳에서 뉴스를 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지속되는 한 대한민국 발전은 없다”며 공영방송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강연이 끝난 뒤 “지금까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냐”는 한 대학생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최 PD는 과거 ‘황우석 사건’을 보도하던 당시를 꼽았습니다. “위인 대우를 받던 인물을 겨냥하면서 어마어마한 방해와 비판을 받았고 어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방송을 해냈죠.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진실보도를 위한 언론인들의 치열한 싸움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역사일 겁니다.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가 언론의 존재 이유인 이상 정권과의 아슬아슬한 긴장과 갈등은 언론의 숙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최 PD의 말처럼 ‘적어도 그때’는 공영방송에 대한 보도통제가 청와대 홍보수석 본연의 임무란 어불성설을 이토록 당당하게 듣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만 해도’ 아무리 입바른 소리를 하는 언론인이 밉다 한들 그것도 공영방송이 부당징계의 칼날을 이토록 노골적으로 휘두르진 않았습니다.
26년을 몸담았던 공영방송 MBC에서 해고된 한 언론인의 강연으로 주말을 보내며 암담한 공영방송의 현실을 새삼 깨달았고, 이형기의 시 한 토막을 문득 떠올렸습니다.
‘텅텅 비어 있는 여기저기에 누구에게나처럼 벌레는 운다. 행복하고 싶었던 그 시절이 실은 행복한 시절이었다. (‘불행’)’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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