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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한국경제의 골든타임

입력
2016.12.0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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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주말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횃불을 들고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주말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횃불을 들고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단 한 순간도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대국민 담화에서 강조한 말이다. 박 대통령은 주말마다 200여만명의 국민들이 모여 ‘박근혜 구속’을 외치는 게 전혀 이해도 안 되고 억울하기까진 한 모양이다. 그러나 지난 3일 서울 광화문 광장 촛불 집회 중 대형 스크린에 박 대통령의 이 말이 자료 화면으로 뜨자 시민들은 “우~우~”하며 조롱에 가까운 야유를 보냈다. 옆에 있던 한 노인은 “나 원 참”이라며 혀를 찼고, 한 어린이도 “헐”이라며 어처구니 없어 했다. 이 뻔뻔한 말 한마디가 부른 분노가 이날 사상 최대 촛불 집회로 이어졌다.

피고인 최순실과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 수석의 공소장만 봐도 박 대통령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검찰 공소장을 통해 드러난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의 민낯은 민망하기 짝이 없다. 대표적인 예가 박 대통령이 2014년11월27일 정몽구 현대차 회장을 만났을 때 최씨의 딸(정유라) 친구네가 운영하는 KD코퍼레이션의 소개 자료를 건네며 현대차 납품을 강요한 일이다. KD코퍼레이션은 이후 20개월 동안 10여억원 어치를 납품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를 만나 월 5,000만원짜리 납품건이 성사되도록 ‘브로커’ 역할을 한 셈이다. 박 대통령 스스로 ‘오랜 인연으로 도움을 받았다’고 밝힌 최씨는 이 건으로 1,000만원이 넘는 샤넬백과 현금 4,000만원까지 챙겼다.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의 독대는 필요하고 중요하다. 이런 자리에선 전체 국가 경제와 민족의 미래를 위한 길고 먼 안목의 큰 그림이 그려져야 마땅하다.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의 고충이 있다면 귀 기울여 들어주고, 기업가 정신이 더 많이 발휘될 수 있도록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야 한다. 그러나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은 이런 만남을 자신이 최씨에게 진 ‘빚’을 갚는 데 써버렸다.

우리나라 최고 지도자가 사적 뒷거래를 위한 깨알 같은 지시로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옆 나라인 중국과 일본은 고강도 개혁을 통해서 경제의 큰 그림을 다시 그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란 중국의 꿈을 위해 21세기 육상ㆍ해상 신 실크로드 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추진, 경제의 외형을 넓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아베노믹스’의 세 가지 화살(통화완화, 재정확대, 성장전략)을 통해 기업들의 경쟁력을 살려내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국가 지도자로서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경제를 살려 일자리와 출산을 늘리는 것이다. 일자리가 없으면 연애도, 결혼도 할 수 없다. 젊은 사람들이 결혼하지 못한다면 갓난 아이의 울음 소리도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국가의 존속과 직결된 일이다. 중일은 현재 두 지도자 밑에서 적어도 일자리 걱정은 없는 상태다. 올해도 중국에선 1,00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됐다. 일본도 실업률이 21년만에 최저치로, 사실상 완전 고용 상태다. 반면 우리나라는 청년 실업률이 8.5%로, 1999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다. 실질 체감 실업률은 35%에 육박하고 있다. 일자리가 있다 해도 비정규직과 ‘열정페이’만 강요, 일자리의 질은 더 안 좋다.

일자리뿐 아니라 0%대 성장률, 외환위기 수준으로 추락한 제조업 가동률, 2009년 4월 이후 최저인 소비심리절벽까지 대한민국경제호(號)는 이미 침몰 직전의 위기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 사태가 아니라 경제만 봐도 실패한 선장이다. 그런 박 대통령이 국민들의 명령마저 거부한 채 시간만 계속 끌고 있다. 세월호 7시간의 진실조차 밝히지 못하는 박 대통령이 이번에는 침몰하는 대한민국경제호를 살릴 골든타임마저 낭비하고 있다. 한시라도 빨리 선장직을 반납하는 게 박 대통령의 마지막 도리다. 박일근 산업부장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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