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졸업 자폐장애 양경민씨
잠재력 키워준 고3담임 매년 찾아
특수학교에선 흔치 않은 광경
“선생님, 같이 춘천 다녀온 일 기억하시나요?”
스승의날 하루 전인 지난 14일 양경민(23)씨는 2013년 고3 시절 담임이었던 교사 정경진(33)씨를 찾아가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을 달아주며 이렇게 말했다. 남들에겐 흔한 카네이션일지 몰라도 이들이 주고 받는 카네이션은 의미가 깊다. 양씨는 2013년까지 특수학교인 서울 일원동 밀알학교를 다녔던 발달 장애(자폐) 장애인이다. 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 이전에는 비장애인 학교에선 사제 지간에 카네이션을 주고 받는 일이 흔했지만, 특수학교는 사정이 다르다. 비장애인 학교와 달리 고교생들에게도 양치질과 신발 신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 특수학교의 사정을 감안하면, 제자가 교사에게 직접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일은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양씨는 2013년 졸업 이후 매년 꼬박꼬박 정씨를 찾아가 카네이션을 선물하고 있다. 이는 양씨가 무사히 학교를 졸업해 직장생활을 하기까지 정씨가 단순히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를 넘어서 큰 도움을 준 데 대한 마음의 보답이다. 정씨는 형이 동생을 대하듯 지금도 종종 양씨를 불러 고민을 들어주고 진로 상담을 해준다.
양씨는 2011년 발달장애인들이 다니는 밀알학교로 전학을 왔다. 비장애인들이 다니는 인문계 고교를 다녔지만, 친구들의 괴롭힘을 더는 견디기 어려웠다. 자폐 장애인은 지능 측면에선 부족함이 없고 사회성이 부족할 뿐이지만, 비장애인 학교는 여전히 자폐 장애인에게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양씨는 고3 시절 정씨를 만나 많은 도움을 받았다. 다른 자폐 학생들보다 의사 소통 능력이 뛰어나 2013년 서울시 발달장애인 자기권리주장대회에서 1등을 하고, 이어 보건복지부 등이 후원하는 전국 발달장애인 자기권리주장대회에서도 2등을 수상했다. 2등 상을 받은 대회가 춘천에서 열렸고 두 사람은 이를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주제를 정해 웅변을 하는 대회로, 당시 양씨는 북한의 정세에 대해 비장애인 못지 않은 명석한 분석을 했다고 정씨는 기억했다. 정씨는 “양씨는 북한 상황, 성경, 지리학 등의 지식은 비장애인 못지 않다”면서 “특히 특수학교를 다니면서 다른 친구들을 잘 챙겨줬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앞으로 대학에 진학해 지리학이나 신학을 전공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는 양씨는 이를 위해 영어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정씨는 “앞으로도 제자의 꿈을 응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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