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답 과정서 호흡 등 생체반응 변화 분석
긴장 정도 달라 검사관 해석이 변수
교통사고 수사 때 탐지기 쓰면 40% 자백
#2
‘청심환 먹고 트릭’ 땐 반드시 티 나고
공포ㆍ죄의식 없을수록 반응 약해
거짓말, 끝까지 성공 못해… 진실 꼭 드러난다
“대중 앞에서 거짓말하는 게 더 쉽습니다. 당장은 밝혀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죠. 하지만 거짓말은 끝까지 성공할 수 없습니다.”
22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만난 최효택(62) 국제법과학감정원 심리분석연구소장은 “진실은 밝혀진다”고 말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33년간 연구관, 거짓말탐지 검사관으로 일하며 그가 매년 분석한 용의자만 600~800명. ‘이윤상 유괴 살해 사건’(1980년 11월)을 계기로 거짓말탐지에 관심을 가진 이후 평생을 바쳤다. 은퇴 후에도 법원 촉탁 민간감정기관인 국제법과학감정원(IFSL)에서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진범을 찾는 뿌듯함”뿐만 아니라 “누명을 벗기는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재판, 수사는 물론이고 부부싸움, 성추행, 층간소음 등 일상 속의 분쟁도 진실을 드러낸 순간 실마리가 풀린다. “연습해서 거짓말탐지기를 교란할 수는 있겠지만 무슨 소용이겠어요. 그런 시도 자체가 범인이라고 자백하는 꼴인데.”
-거짓말탐지 검사를 맡은 계기는.
“서울 마포경찰서 관내에서 중학생 유괴 사건이 발생했는데, 당시 현상금 3,000만원이 걸릴 정도로 초반 수사에 진척이 없었다. 체육교사 등등을 용의선상에 올렸는데 물증이 잘 안 나왔다. 그런데 지금은 작고하신 한 선배가 ‘거짓말탐지기를 한 번 해보자’ 했는데, 체육교사한테서 확실한 거짓반응이 나왔다. 피해자 장갑에 반응한 거다. 그 결과를 토대로 올인해서 단서를 잡고 나니, 그 전까진 ‘그런걸 뭐 하러 하냐’던 형사들이 거짓말탐지 조사를 신뢰하기 시작하고 언론에서도 관심이 커졌다. 그 무렵부터 관심을 갖고 1986년부터는 보직을 바꿔 거짓말탐지만 했다.”
-거짓말을 밝혀내는 원리는.
“피부 전기반응, 호흡, 혈압, 맥박 등으로 문답 과정에서 생체반응, 자율신경계의 변화를 본다. 사람마다 평시 상태(base line)가 다르고, 질문에 반응하거나 긴장하는 정도도 달라 검사관의 평가, 분석이 중요하다. 탐지기가 정답을 알려주는 건 아니다.”
-긴장을 잘 하면 거짓으로 몰릴 수 있나.
“그렇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도 심리적 불안 등으로 신체변화를 일으킨다. 그래서 숙련된 검사관의 분석이 중요하다. 긴장의 종류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하고, 질문을 잘해야 한다. 예를 들면 성범죄 관련 거짓말 조사를 할 때 남성 분들은 질문 자체에 자극을 받는다. 그런 동요와 거짓말 반응을 분리해서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질문 자체에 동요하지 않도록 조사를 설계해야 하고, 법원에서도 감정서를 볼 때 이런 조사의 합리성 여부를 중요하게 여긴다.”
-분석관에 따라 결과가 갈릴 수도 있겠다.
“친구끼리 주식가치 200억 규모 회사를 놓고 싸움이 붙은 사건이 있었다. 5,000만원씩 투자로 회사를 키웠는데 서류상 대표인 A씨가 ‘네가 언제 투자했냐’고 돌변한 거다. 황당하게도 B씨가 돈을 줬다는 근거가 남아있질 않았다. 두 사람이 검찰 수사에서 거짓말탐지 검사를 했는데 B씨가 거짓말을 하는 걸로 나왔다. 재판 도중 B씨가 너무 억울하다고 재감정을 해달라 호소를 하니 당시 국과수로 재감정이 들어왔다. 재조사에 A씨는 불응했고, B씨는 진실반응이 나왔다. 판례상 감정서 자체가 물증은 안 되는데, 재판부가 정황에 참고는 했다. 판결문엔 국과수 질문지가 합리적이었다고 판시됐다.”
-신뢰도와 증거능력은 어느 정도인가.
“현역 때 국과수 조사의 신뢰도를 98%로 봤다. 탐지 결과 진범으로 지목한 사람에게 실제 물증이 나오거나 자백하거나 한 비율이다. 다만 대법원 판례는 정황증거로만 인정한다고 돼 있다. 나도 증거 인정은 아직 반대한다. 혹시라도 억울한 사람이 나올 수도 있고, 해석을 얼마나 숙련된 분석가가 하느냐에 따른 변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사와 재판에 도움을 주는 정도가 좋다.”
-한계가 있는데도 수사에 도움이 되나.
“강력사건의 경우 용의자가 한두 명이 아니지 않나. 탐지검사로 아닌 사람, 유력한 용의자를 추리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인력, 예산낭비를 하지 않을 수 있다. 교통사고 수사에서도 탐지기를 쓰면 자백하는 비율이 40%쯤 된다. 지금은 블랙박스를 다 쓰지만, 과거엔 끝까지 서로 ‘네가 신호를 위반했다’고 우긴다. 그 경우 조사 전 ‘지금이라도 사실 그대로 말하면 법도 관용을 베풀지만 검사로 사실이 밝혀지만 위증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고 하면 40%가 탐지검사 전 사실을 말한다.”
-훈련해서 탐지기를 속일 수 있을까.
“소위 탐지기를 속이는 요령을 묻는 분들이 있다. (웃음) 기본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생리반응, 자율신경계 변화는 의지나 노력, 성격으로 통제되는 게 아니다. 다만 트릭을 쓸 순 있는데, 뻔한 질문에도 긴장하는 식으로 전문가의 해석을 방해하는 거다. 하지만 트릭을 쓰면 반드시 티가 나고, 그 자체가 의심스러운 징후다. 진실한 사람은 조사에 협조한다. 조사를 뛰어넘으려는 트릭 같은 건 득이 없다.”
-수사 방해자는 대부분 거짓말쟁이라는 말인가.
“억울한 사람일수록 수사에 협조하고, 조사에 적극성을 띠는 게 당연하지 않나. 피의자가 오면 수사관들이 일단 ‘탐지기 해보자’고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뭐든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대체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사람은 조사에 적극적이지 않다.”
-약을 먹고 오는 경우는.
“청심환 같은 걸 먹고 오는 분도 꽤 있다. 신경안정제도. 그런 경우 심장 패턴에서 티가 난다. 게다가 국과수에서 실험한 결과 거짓말에 대한 반응은 차이가 없다. 간혹 약물의 효과로 반응이 안 나올 가능성이 있지만 몇 시간 뒤에 다시 하면 그만이다. 너무 얕은 수다. (웃음)”
-수상한데, 무사 통과한 경우는 없었나.
“탐지기 작동의 기본 전제는 죄의식이다. 죄의식이 없을수록 반응이 약하다. 과거 ‘두 부녀자 행방불명 사건’ 수사 때가 그랬다. 주부도박판에서 돈 빌려주고 선이자를 받던 두 여성이 사라졌다. 둘에게 가장 큰 빚을 지고 있던 C의 남편 D를 용의선상에 올렸는데 물증이 쉽게 안 나왔다. D는 줄기차게 ‘나는 부인이 도박을 한 줄도, 돈을 빌린 줄도 몰랐다, 그런 여자들을 모른다’고 주장했다. 수사력을 어디 집중해야 할지 난감한 상태에서 지방경찰청 거짓말 탐지에서도 ‘판단불가’가 나왔다. 국과수에서 탐지하니 정말 반응이 미약했다. 2명이나 납치해 죽였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덤덤했다.”
-어떻게 진범으로 밝혀졌나.
“부인 C에게 ‘당신 도박 빚을 남편이 아냐 모르냐’ 조사했더니 ‘모른다’는 답변에 거짓반응이 확연했다. 다시 D를 불러 불특정 여성사진을 쭉 보여주다 피해자 사진을 보여주니 뇌파가 격렬 반응하더라. 결국 D를 유력 용의자로 보고 수사력을 집중해 물증을 찾았다.”
-거짓말 반응이 잘 안 나오는 것은 어떤 경우인가.
“D가 조폭생활을 오래한데다 아랫사람에게 범행을 시켜서, 자기는 완전범죄를 저질렀다고 100% 확신하고 죄의식도 없었다. 그렇게 죄의식이 없을수록, 거짓말의 대가로 내가 큰 처벌을 받을 거라는 공포가 없을수록 반응이 약할 수 있다. 그래서 분석관의 경험과 다양한 시도가 중요하다.”
-사이코패스는 거짓말탐지기에 걸리나, 안 걸리나.
“거짓으로 탐지되지 않을 가능성이 보통 사람보다 크다. 사전에 조사해 사이코패스로 판정되면 탐지기 조사를 하더라도 여러 변수를 열어 둔다. 물론 사이코패스의 연쇄살인사건 수사도 탐지기를 이용해 성공한 경우가 많다.”
-스스로 진실이라고 믿는 경우엔?
“탐지기론 거짓을 밝히기 어렵다. 그들은 착각에 빠져있지 않나. 밥그릇을 컵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으면 거짓말이라는 자의식도 없고, 공포도, 죄의식도 없다.”
-탐지기를 청문회장에 놓으면 어떨까.
“이 검사는 장소가 중요하다. 여러 사람이 있는 공개된 공간에서 하는 거짓말이 더 부담이 적다. 의외일 수 있지만 그렇다. 내가 여기서 거짓말을 하거나 기억 안 난다고 해도 아무도 모를 수 있거나 당장은 밝혀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강한 것이다. 전문가와 마주앉은 조사실에서보다 뻔뻔하게 거짓말하기가 훨씬 쉽다. 청중 중에 자기 거짓말을 아는 사람이 있을 때만 반대다.”
-은퇴 후에도 계속 활동하는 이유는.
“현역 때 진범을 밝히는 것도 뿌듯했지만, 억울한 사람들의 누명을 벗기는 보람도 있었다. 수 만 명의 거짓말을 탐지했는데, 비율로 보면 진실을 말한 사람이 더 많았다. 10명이 불려오면 그 중 1명만 진범이니 당연하다. 진실 반응을 확인해 억울함을 풀어주면 기분이 좋더라.”
-개인적으로 찾는 분들은 어떤 이유로 오나.
“부부 등 가족문제, 조용히 처리해야 하는 회사 내 사고 등 다양하다. 의뢰인 E씨는 층간소음으로 아랫집 분과 말싸움을 했는데, ‘칼 들고 협박했다’는 누명을 썼다고 했다. 아랫집 분이 그렇게 신고를 한 거다. 답답해서 저를 찾아와 검사를 했는데 진실반응이 나왔다. 서로 불륜을 의심하며 정신과까지 다니던 부부도 찾아와서 진실반응을 보고 화해하고 가신다.”
-인생 상담소 같다.
“물론 이혼한 경우도 있다. 거짓반응이 나와 설명했더니 아내 분이 그 자리에서 자백을 해버리더라. ‘미안하다. 며칠 날 누구와 어느 모텔에 갔다’고. 남편 분이 허무해서 저한테 ‘차라리 말을 하지 말지 그랬냐’고 하시더라. 그래서 누구든 오시면 미리 말씀 드린다. ‘거짓말 시도하려면 다른 데 가세요. 여기선 다 나옵니다’하고. 어떨 땐 ‘사실 저 바람 폈는데 가짜 감정서 좀 써가고 싶다’고도 한다. 그렇겐 안 된다. 법원 촉탁으로 재판 중인 사건 감정도 하는데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재판 중인 사건은 선서까지 하고 조사한다.”
-찾는 분이 많은가.
“한 달에 10~20분 정도 된다. 업체에서 조사를 의뢰할 땐 출장을 간다. 바깥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면 하는 사내 범죄들이다. 누군가 고의로 제품을 손상했거나 산업스파이의 기밀 유출 사건 등이다. 수사기관에 신고하면 보도되고 일이 커지니까.”
-결과는.
“잡았다. 딱 한 사람씩 거짓말이 나오는데, 그 때마다 사표 쓰더라.”
-거짓말을 시도하는 분들에게 한 말씀 한다면.
“하지 마시라. 끝까지 성공할 수 없다. 수사, 조사하는 사람들은 늘 범죄를, 거짓말을 앞서가려고 노력 중이다. 과학도 발전한다. 실체적 진실은 반드시 드러난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