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부터 24일까지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어지고 있는 필리버스터(filibuster)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국회에서 다수당 횡포를 막기 위해 소수당이 선택할 수 있는 합법적 의사진행방해’를 뜻하는 필리버스터는 이틀 내내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필리버스터를 한 더불어민주당의 김광진, 은수미 의원은 ‘필리버스타’로 불리고 있으며, 은 의원의 필리버스터 과정에서 논쟁을 일으킨 새누리당 김용남 의원도 덩달아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필리버스터에 대한 높은 관심은 각 언론사의 보도로도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필리버스터 역사와 관련된 보도에서 언론사마다 미묘하게 다른 수치 하나가 등장했습니다. 한국일보 등은 ‘52년 만에 재등장한 필리버스터’로 보도하고 있고, 일부 매체는 52년이 아닌 43년, 47년 만에 재등장이라고도 보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혼선은 재등장 계산 기준 시점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여부로 갈렸습니다. 52년 재등장 계산의 기준은 전날 이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마지막으로 필리버스터를 진행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1964년 발언을 기준으로 삼은 것입니다. 같은 국회 본회의장이라는 장소에서, 같은 목적으로 필리버스터를 한 정치인의 행위를 비교할 경우 52년의 시차가 난다는 계산입니다.
반면 43년 계산은 1973년 국회법 신설로 필리버스터 제도가 폐기된 시점을 기준으로 나왔습니다. 법 폐기 이전 김 전 대통령 등의 발언은 제외하고, 법이 사라진 뒤 현실에 다시 나타난 전날 필리버스터 현상에만 의미를 부여한 계산법인 셈입니다. 47년은 1969년 신민당 박한상 의원의 3선 개헌안 저지를 위한 10시간 15분의 발언을 한 것을 기준으로 나온 계산법입니다. 그러나 이 계산법의 경우, 박 의원의 발언이 국회 본회의장이 아닌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진행된 것이라는 오류에 걸립니다. 서서 발언해야 하는 국회 본회의장과 앉아서 발언하는 상임위 회의장의 차이 등을 고려할 때 엄밀한 의미의 필리버스터라 보기 힘들다는 게 중론입니다.
정치권에서는 미묘하게 다른 세 계산법에 대해 52년 재등장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국회입법조사처가 2012년 발행한 ‘이슈와 논점’ 등의 자료에는 64년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이 마지막 필리버스터라는 취지의 기록이 있으며, 국회 자료를 관리하는 실무진들도 김 전 대통령 발언을 필리버스터의 역사적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국회 의사과의 핵심 관계자는 “국회법 폐기 이후 필리버스터와 과거 김 전 대통령의 필리버스터가 큰 틀에서 성격이 달라지지 않아 굳이 법 폐기 시점을 기준으로 삼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며 “김 전 대통령 발언을 기준으로 지금의 필리버스터를 평가하는 게 현상의 본질을 더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국회 사무처의 한 ‘고참’인사도 “박한상 의원의 발언은 국회 본회의가 아니라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진행된 것이라 전날 진행된 본회의장 내 필리버스터와는 엄밀히 따져 성격이 다르다”며 “자료를 찾아봐도 김 전 대통령의 64년 발언이 마지막 필리버스터인 것으로 확인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정재호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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