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인 낸시 레이건 여사가 6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4세. 레이건 대통령 기념 도서관의 조앤 드레이크 대변인은 “낸시 여사가 6일 오전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의 벨에어 자택에서 울혈성 심부전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미 정치권과 언론은 이날 일제히 성명을 내고 “낸시 여사는 미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대통령 부인이었다”고 애도했다.
1921년 뉴욕에서 출생한 낸시 여사는 1940~ 50년대 할리우드 배우로 활약하다 1952년 당시 유명 배우였던 남편 레이건 전 대통령과 결혼했다. 낸시 여사는 2년 뒤인 1956년 연예계를 완전히 떠난 후 레이건 전 대통령의 전 부인 소생을 비롯한 자녀들의 양육에 주력하며 충실한 배우자의 삶을 살았다. 이후 레이건 전 대통령이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일한 1967년부터 1975년까지 주지사 부인으로 활동하다 1980년 남편을 따라 백악관에 입성했다.
1981년부터 1989년까지 레이건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 낸시 여사는 막후에서 남편의 정치적 조언자를 자처하며 정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특히 레이건 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부터는 비서실장 인사는 물론 외교정책 등에 관여했고, 2004년 남편의 별세 후에는 공화당 원로로 활동했다. 또한 낸시 여사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마약 퇴치 캠페인으로 꼽히는 ‘아니라고 말하라’(Just say no) 운동을 주도했으며, 퇴임 이후에는 남편이 앓던 알츠하이머병 퇴치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다만 낸시 여사는 백악관에 머무는 동안 주요 의사결정을 심령술사에 의존하거나, 값비싼 식기나 의류, 실내장식 등을 사들이며 국민의 비난을 사기도 했다.
CNN은 “낸시 여사와 레이건 전 대통령의 52년 결혼생활은 대통령 부부의 가장 위대한 사랑 이야기로 미국인의 기억에 남아있다”고 전했다. 낸시 부인은 1981년 3월 레이건 전 대통령이 총격을 받았을 때나, 1994년 11월 알츠하이머병 초기 진단을 받고 이후 10년간 투병생활을 할 때도 한결같이 옆을 지키며 극진히 간호해 국민의 신망을 되찾았다. 낸시 여사는 1996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알츠하이머를 앓는 남편을 대신해 연설했고, 2004년 남편의 사망 이후엔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조용히 생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 대선을 앞두고 양분된 정치권도 이날만은 한 목소리로 낸시 여사의 별세 소식에 애도를 표했다. 공화당 대선 경선 선두주자인 도널드 트럼프는 “낸시는 진정으로 위대한 대통령 부인이었으며 놀라운 여성이었다”라며 “그녀가 그리울 것이다”고 밝혔다. 같은 대통령 부인 출신이면서 민주당 대선 레이스 선두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공동으로 낸 성명에서 “남편이 암살미수 사건을 겪었을 때,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던 시기에 그녀가 보여준 강인한 모습은 전설로 남아있다”고 강조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부부는 “생전 낸시 여사는 대통령 부인의 역할을 재정립한 인물이다”라며 “그녀의 도움을 받았다는 점에서 우리는 행운을 누렸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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