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두언
전 국회의원

등록 : 2017.12.24 12:43
수정 : 2017.12.24 17:16

[정두언 칼럼] 박정희는 왜 평준화 조치를 취했을까

등록 : 2017.12.24 12:43
수정 : 2017.12.24 17:16

외고 등의 학생 선발권은 탈법특혜

초등부터 입시준비 사교육 더 팽창

현 교육상황 국가안보차원서 심각

거의 반세기 전 필자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중학교 입시를 위해서 한창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중학교 입시를 없애고 추첨으로 학생을 선발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평준화 조치가 왜 내려졌는지 당시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장성해서도 어떻게 극우파인 박정희가 그렇게 파격적인 ‘좌파적’ 조치를 취했을까 늘 의문이었다. 요즘에 와서는 이해가 간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이 그때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다는 거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보자.

첫째, 당시는 모든 학교가 선발권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은 외고, 자사고 등 일부 학교만 선발권을 가지고 있다. 모든 학교가 선발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당시 몇몇 명문학교가 인재를 싹쓸이하고 과외공부 열풍을 불러일으킨다 해서 아예 입시를 없애버렸다. 이에 비해 외고 등은 외국어 등에 소질과 적성이 있는 학생을 뽑으라고 준 독점적인 선발권을 남용하여 전 과목 우수자를 싹쓸이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 탈법특혜다.

둘째, 당시는 입시준비를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3학년 때 집중적으로 했다. 그러나 지금은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준비를 시작한다.

셋째, 당시는 어쨌든 공교육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분명히 사교육이 우선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건 공교육을 살리기 위해서 계속 입시에 내신반영을 확대하는데, 효과를 보기는커녕 사교육이 더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넷째, 그래도 당시에는 개천에 용 나는 게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불가능하다. 외고 등은 초등학교 때부터 사교육비를 댈 능력이 없으면 꿈도 꾸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교육이 저출산 양극화의 주범으로 몰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섯째, 당시의 사교육 시장은 몇몇 유명학원 외에는 대부분이 대학생 아르바이트였다. 그러나 지금은 시가총액 1조원대 사교육 업체가 등장할 정도로 사교육 시장이 번창하고 있다. 국가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이라는 면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여섯째, 당시는 교육과 부동산은 별 상관관계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강남 8학군과 학원밀집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왔다. 이로 인한 지역간 계층간 위화감은 또 어떤가.

일곱째, 당시에는 대학생들이 뭐니뭐니해도 자기주도 학습능력은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초등학교 때부터 밤늦게까지 공부를 했어도 대학에서 교수들의 학생 만족도는 형편이 없다. 쓸데없는 공부를 하느라 청춘 다 보낸 거다.

여덟째, 당시에는 외국유학이 자유롭지 않아 그렇긴 했지만, 어쨌든 조기유학은 드문 현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엄청난 사교육비 부담 때문에 조기유학이 만성화되었다.

아홉째, 수월성 교육이다.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특정학교에만 선발권을 주어서 일류학교를 만드는 예는 거의 없다. 독점적인 선발권을 주어서 수월성을 추구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않고 교육적이지도 않으며 특히 위에서 봤듯이 반드시 엄청난 부작용이 나오게 되어 있다. 수월성은 선발경쟁이 아니라 교육경쟁으로 추구하는 것이 공정하고 교육적이다. 우수학생만을 독점적으로 뽑아서 일류학교를 만드는 건 땅 짚고 헤엄치기 아닌가. 그리고 나머지 대다수의 일반학교는 무슨 죄를 지어서 수월성의 사각지대로 만드는가. 선진국들은 실정과 여건에 따라 영재학급, 지역공동 영재반, 영재교육센터, 방과 후 영재학급, 월반, 조기진학, 조기졸업 등 다양한 형태로 수월성 교육을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영재교육진흥법에 의하면 그런 교육을 할 수 있게끔 되어 있다. 그러나 외고 등이 성적 우수자들을 싹쓸이해가는 통에 그런 교육을 할 여지가 없는 실정이다.

마지막으로, 자율과 경쟁을 지향하면서 외고 등을 규제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주장이 있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자율과 경쟁의 적은 하나가 규제라면 둘은 독과점이다. 경제학의 기본이다. 규제가 분명한 적이라면 독과점은 불분명한 적이다. 그래서 후자가 더 폐해가 크고 시정이 어렵다. 외고 등은 독점 중에서 가장 악성이다. 탈법특혜성 독점이기 때문이다. 특히 외고는 설립 목적과 전혀 다르게 운영되고 있는데도 이를 방치하고 있다.

더구나 일반고는 손발을 묶어놓고 외고 등에만 선발권을 주다 보니 일반고들은 타의에 의해 대부분 삼류고로 전락하고 만다. 다시 말하지만, 과거 평준화 이전의 명문고들은 교육경쟁으로 일류가 된 것인데, 우리는 마치 선발권을 주어서 일류가 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당시는 모든 학교가 선발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듯 외고 등의 독점체제는 평준화 규제 이상으로 교육시장을 왜곡시켰고, 그 결과 온 나라가 사교육 광풍에 빠져버린 것이다. 박정희의 평준화 조치는 정권안보 차원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의 우리 교육상황은 국가안보 차원에서 심각하다.

정두언 전 국회의원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일보 페이스북

한국일보 트위터

한국일보닷컴 전체기사 RSS

RSS

한국일보닷컴 모바일 앱 다운받기

앱스토어구글스토어

한국일보닷컴 서비스 전체보기

Go

뉴스 NOW

이전

  • 종합
  • 정치
  • 사회
  • 경제
  • 국제
  • 문화
  • 연예
  • 라이프
  • 스포츠

다음

오늘의 사진

많이 본 뉴스

  • 1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