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은행들 예·적금 금리 2%대마저 속속 깨져
대출 이자도 내려가면 고정금리 주택 대출자 손해
중소기업에서 재작년 퇴직한 김형식(63ㆍ가명)씨는 그 해 8월 퇴직금 3억원 가량을 은행 정기예금에 넣었다.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해볼까 망설이기도 했지만, 노후에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목돈이었기에 선뜻 나서기 힘들었다. 그래도 당시만해도 금리가 썩 나쁘진 않았다. 2년 만기에 연 4.1%. 세금을 빼고도 연간 이자 수입이 1,000만원이 조금 넘었다. 매달 40만원 가량인 국민연금까지 합치면 빠듯하게 나마 부부가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문제는 곧 다가오는 만기. 이자를 찾고 원금 3억원을 다시 은행에 넣는다면 기껏해야 받을 수 있는 금리가 2%대 초반에 불과하다. 더구나 한국은행이 지난 14일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예금금리는 1%대로 추락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 김씨는 “2년 전보다 이자가 거의 반토막이 나게 됐다”며 “도저히 생활비 충당이 불가능해 아파트 경비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껏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초저금리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지고 있다. 이자 수입에만 의존해 온 은퇴자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릴 처지가 됐고, 고정금리 대출을 받은 대출자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역마진에 시달리고 있는 보험사도, 보험소비자도 저금리 고통을 함께 분담해야 할 처지가 됐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 우리 신한 하나 농협 등 주요 시중은행들은 한은 기준금리 인하에 따라 이번 주중 회의를 열고 예ㆍ적금 금리의 인하폭과 시기 등을 결정할 방침이다. 이미 이들 은행은 최근 시장금리 인하 분위기를 반영해 1년 만기 금리를 일제히 0.1~0.2%포인트씩 내린 상황. 우리은행의 경우 지난달 이자 월지금식 일반정기예금의 금리를 0.1%포인트 낮춰 1년 만기 기준으로 금리가 1.9%가 됐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1%대 금리 상품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만약에 한은이 한 차례 기준금리를 더 내리는 상황이 온다면 2%대 예금 상품은 아예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김씨 같은 은퇴생활자는 물론이고 예ㆍ적금을 통해 목돈을 만들어야 하는 서민들도 상당히 곤혹스러운 처지다. 직장 3년 차인 정윤권(32)씨는 “은행에 예ㆍ적금을 해봐야 목돈을 만들기는 현실적으로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이러다 보니 주식이나 펀드 등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는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이 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정금리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대출자들은 억울함을 토로한다. 대부분 대출 당시 정부와 은행권의 권유로 고정금리를 선택했지만, 결과적으로 금리 손해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탓이다. 실제 가계대출에서 고정금리 대출 비중(잔액기준)은 6월 25.7%를 기록, 자료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9년말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금융당국 지침에 따라 2017년까지 고정금리 대출비중을 전체 가계부채의 40%까지 높여야 하기 때문에 은행들이 고정금리 상품을 권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보험사들은 역마진 비명을 쏟아낸다. 국내 보험사들은 과거 연 6% 이상 고금리를 보장하는 확정금리 상품을 대거 팔았지만, 초저금리 시대가 가속화하면서 자산운용수익률이 급락하게 돼 적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 것. 역마진을 피하려는 보험사들이 잇따라 보장성보험 공시이율을 낮추면서 그 손해는 보험금 축소 등으로 고스란히 보험소비자들에게도 전가되는 모습이다. 이 뿐이 아니다. 초저금리 상황이 지속되면 집주인들은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빨라지고 있는 전세의 월세 전환이 더 가속화되면서 세입자들의 고통도 더 커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물론 우는 이들이 있으면 웃는 이들도 있는 법. 하우스푸어 등은 대출금리 부담이 다소 줄어들면서 초저금리 시대를 반기고 있다. 하지만 저금리가 가파른 대출 증가로 이어질 경우 잠시 멎은 진통이 향후 더 커질 수 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가계부채 급증으로 지금보다 원리금 상환 부담이 더 늘어나는 가계가 많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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