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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 안나게 예뻐진 내 얼굴" 자신감인가요 중독인가요

입력
2015.03.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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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아닌 보톡스·필러 등 주입, 감쪽같이 시술하는 여성 급증

"비용 부담 적고 퇴근 길에 15분, 통증 없고 외모 자신감 생겨 도움"

과대광고 판치고 빈번한 시술, 부작용은 숨겨 소비자들 현혹도

전 남자친구의 한 마디가 결정적이었다. “지금 보니 네 콧구멍 장난 아니다. 그 코로 냄새 다 빨아들이겠는데?” 백화점에서 향수를 시향하던 모습을 보고 그가 던진 말이었다. 직장인 장모(26)씨의 고백이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보다 크고 넓은 콧볼이 컴플렉스였는데 막상 그 말을 면전에서 직접, 그것도 남자친구에게 들으니 충격이었고 상처가 컸어요.”

며칠 뒤 장씨는 회사 점심시간을 이용해 근처 성형외과를 찾았다. 그의 선택은 ‘콧구멍 보톡스’. 주변 근육에 약물을 주사해 콧볼을 축소시키는 시술이었다. 대기시간까지 포함 20분 만에 시술을 마치고 병원을 나왔다. 바로 회사로 돌아갔고 평소와 똑같이 업무를 했다. 코가 살짝 욱신거렸지만 참을 만 한 정도였고 옆에 앉은 동료들은 시술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남자친구와는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졌다는 장씨가 말했다. “그때는 상처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 사람한테 고마워요. 간단한 시술이라 크게 티는 안 났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자신감을 얻었거든요.”

감쪽녀들의 속마음

‘감쪽녀’가 많아졌다. 성형한 것은 분명하나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 전혀 티가 안 나게 한마디로 ‘감쪽같이’ 성형한 여성을 일컫는 말이다. 한 포털 사이트 오픈 사전에도 나와 있는 단어다. ‘절개하고 깎고 꿰매고’ 하는, 즉 수술대에 올라 마취 후 진행하는 수술이 아닌 보톡스·필러·실 리프팅 등 특정 약물을 해당 부위에 주입하는 시술 등을 통해 외모에 대한 자신감을 얻는 여성들을 가리킨다.

손을 대서 얼굴이 달라진 케이스는 다양하다. ‘성괴(성형괴물)’ ‘강남언니(큰 눈·높은 콧날·볼록한 이마 등 획일적인 성형수술을 받아 하나같이 똑같은 얼굴을 비하하는 말) ‘의란성 쌍둥이(비슷한 성형수술 탓에 쌍둥이 같은 얼굴을 가지게 된 여성들을 뜻하는 말)’…. 하지만 성형수술을 한 여성을 부정적으로 표현한 이들 신조어들과 달리, 감쪽녀는 간단한 시술로 외모가 자연스럽고 매력적으로 변했다는 비교적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감쪽녀들은 “성형녀 혹은 인조인간 이미지는 왠지 부끄럽고 부담스럽지만 감쪽같은 외모 업그레이드에 대해선 오히려 뿌듯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감쪽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6개월마다 7만~10만원을 주고 턱 부위에 보톡스 주사를 맞는다는 직장인 최모(29)씨의 고백. “티 안 나게 예뻐진다는 느낌이 좋아요. 솔직히 성형은 아니잖아요? 수술보다 지속성은 떨어져 꾸준히 시술을 받아야 한다는 단점이 있어요. 그래도 사람들이 제 얼굴을 보고 살 빠진 것 같다고 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어요. 시간도 5분이면 충분하니 꼭 휴가를 내지 않아도 되니까 주로 퇴근길에 병원에 들려요. 가격도 한 번에 몇 만원이니 부담스럽지 않고요.

지난해 약 30만원을 주고 평소 컴플렉스이던 매부리코에 필러 시술을 받았다는 대학생 한모(24)씨의 생각도 비슷했다. “방학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학교 근처 병원을 찾았어요. 딱 15분 걸렸어요. 붓기나 통증도 없으니 같이 사는 우리 엄마도 못 알아봐요. 시술을 성형외과에서 받긴 하지만 성형수술은 아니니까 성형녀란 비판에서도 자유롭죠. 전 만족스러워요.”

"길 가다가 얼굴 전체에 붕대를 칭칭 감고 다니거나 실리콘이 튀어나올 정도로 코를 높인 사람들을 보면 조금 무서워요. 고통을 견디고 예뻐지는 건 좋지만 사람들이 저를 독하고 무서운 이미지로 볼까 봐 걱정돼요.” 셀카를 찍으면 스마트 폰에 깔려 있는 사진 보정 앱으로 콧대부터 높이기 바빴다는 대학생 방모(23)씨가 최근 필러 시술을 하게 된 계기였다.

성형 천국과 성형 지옥 사이

지난해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전국 160대 병원 홈페이지 정보를 바탕으로 국내에서 시행되고 있는 미용성형시술(수술과 비수술 방법 포함) 종류를 집계한 결과, 모두 15개 신체부위에 무려 134개 시술이 이뤄지고 있었다. 또 2013년 국제미용성형외과협회가 발표한 세계 성형수술 및 미용시술 건수(2011년 기준)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7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인구 1만 명 당 건수로 따지면 1위다. 좀 더 세분화해서 보자면 인구 1만 명 당 성형수술 건수는 131건으로 2위인 이탈리아(116건)를 거뜬히 제쳤고, 보톡스 등 미용시술 건수는 79건을 기록하며 2위 미국(65건)을 앞서갔다. 이쯤 되면 성형공화국, 세계적 성형강국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 싶다.

성형을 부정적으로 볼 일만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성형은 잃고 살았던 자신감을 회복하고 그로 인해 인간 관계를 발전시키기도 하며 새로운 도전을 꿈 꾸게 하는 기회일 수도 있다. 수술이든 시술이든 성형을 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무조건 손가락질 당하거나 비난을 감수할 이유는 없다. 2년 전 사각턱 축소술과 이마 보톡스 시술 등을 받은 김모(35)씨는 “턱 콤플렉스 때문에 30년 동안 사람 얼굴도 제대로 못 쳐다보면서 살았다. 수술이 얼굴만 바꾼 게 아니라 성격도 활발하게 바꿨다”며 “살면서 성형은 절대 안 하겠노라고 생각할 순 있지만 성형 한 사람을 무조건 욕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도를 넘어선 상술이 판치고, 이로 인해 성형과잉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현실 또한 부정할 수는 없다. 특히 ‘감쪽 성형’ 마케팅을 앞세운 성형외과끼리 과열 경쟁은 이미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다. 국내 한 대형 성형외과는 지난해 이색적인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여성의 눈과 코 부위를 확대한 여러 사진들 중 ‘감쪽같이 성형한 눈과 코’ 사진을 찾는 이벤트였다. 병원 측은 감쪽녀 2명을 모두 골라낸 참가자에게 최대 50% 할인된 가격에 이 병원의 수술이 가능한 혜택을 상품으로 내걸어 성형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1회 시술만으로 극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처럼 광고했다가 실제 병원을 방문하면 수 회짜리 패키지 프로그램을 권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의 한 성형외과는 홈페이지 상에 윤곽주사(약물을 얼굴에 주입해 지방을 녹이는 시술) 가격을 10만원(부가세 별도)으로 공지했지만 실제로 상담을 받아 본 사람들은 병원 측으로부터 “1회 시술로는 효과를 못 본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대학생 조모(26)씨는 “10만원이면 비싼 건 아니라는 생각에 찾아갔지만 적어도 3~5회는 시술을 받아야 갸름해진다는 상담실장의 말을 듣고 발걸음을 돌린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13년 인터넷 홈페이지 광고 등을 통해 거짓·과장 광고를 한 13개 성형외과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그때뿐이었다. 당시 병원들은 ‘누구나 효과를 볼 수 있는’ ‘딱 한 번의 시술로 100% 효과’ 등 부작용을 명시하지 않은 광고로 소비자를 현혹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적발됐지만 유사한 광고는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에는 페이스 북 등 SNS공간에서도 허위·과장 성형 광고가 무분별하게 쏟아지고 있지만 SNS 광고는 사전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서울의 한 성형외과 관계자는 ‘뻔한 말일 수 있지만 진심 어린 조언’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간단한 시술이라 할지라도 인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전문의와 충분한 상담을 한 뒤 오랜 시간 고민을 하고 결정해야 한다. 성형 중독은 절대 남의 일이 아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k.co.kr

김정화 인턴기자(이화여대 중어중문학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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