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듬히 늘어선 가로수 아래로 그림자 자전거가 질주한다. 그 위로 이어지는 뒤집힌 자동차의 행렬, 언뜻 보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장면 같지만 분명 실제다. 오후 햇살과 그림자가 만들어낸 흔한 풍경을 살짝 뒤집어 놓았을 뿐.
구름이 걷힌 거리에 제법 또렷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발 밑을 내려다 보니 무수히 많은 흑백의 윤곽이 행인들의 발걸음을 따라 콘크리트 바닥 위를 누빈다. 그림자를 쫓아 걷는 사이 나도 모르게 그림자 도시 속으로 빠져든다.
그림자를 위주로 바라본 세상은 낯설지만 이성의 눈을 압도하는 착각만은 흥미롭다. 거꾸로 뒤집힌 실제가 가짜로 느껴지고 똑바로 선 그림자는 세상의 주인공이 돼 있다. 퇴근 무렵 지친 직장인과 광장을 배회하는 사람들, 산책 나온 강아지… 눈부신 평면에 맺힌 흑백의 영상이 그림자 인형극처럼 상상력을 자극한다.
착각을 벗어나 거리를 내려다 본다. 햇살 맑은 가을엔 그림자와 현실의 어지러운 공존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얼마나 많은 이가 타인의 그림자를 밟거나 그들 발 밑에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살아가고 있는가. 거리마다 복잡하고 촘촘한 관계 속에서 뒤엉킨 현대인의 삶이 거대한 행위예술처럼 펼쳐지고 있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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