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하얀 저고리, 검은 치마를 입고 숨바꼭질을 하는 소녀들이 맨발로 자유롭게 뛰어다닌다. '뿌웅'하는 기차 화통 소리에 일제 군복을 입은 남자들이 들어와 소녀를 향해 총구를 들이민다. 군인은 소녀를 들쳐 맸다가 바닥에 내팽개친다. 바닥을 기던 소녀는 절규하는 표정으로 고향을 향해 손을 뻗는다. 4분 남짓한 짧은 무대에서 일본군 위안부의 서사가 춤으로 강렬하게 재현된다.
10대 청소년들의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한 댄스 퍼포먼스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달 19일, 경기도 부천의 한 댄스학원 소속 '2H CREW' 팀이 '초중고 댄스대회'에서 선보인 해당 영상은, 페이스북에 올라오자마자 4만5,000회의 '좋아요'와 66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크게 확산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영화 '귀향'의 배경음악에 맞춰 쉴 틈 없이 메운 안무는 해당 댄스학원 대표 노기훈(35)씨가 직접 창작한 것이다. 노 씨는 "비록 이번 댄스대회에서 수상을 하진 못했지만, 뒤늦게 SNS에서 화제가 되어 많은 응원을 받아 더 값진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모두 10대로 구성된 '2H CREW'팀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 군인들에게 끌려갈 당시와 비슷한 또래다. 위안부에 대해서는 역사 교과서를 본 것이 전부였기에, 이들은 공연을 준비하면서 사료를 찾아보고 영화 '귀향'을 함께 감상하며 지식을 습득했다. 뿐만 아니라, 나라를 잃은 한을 연기하기 위해 한국무용과 연기 트레이닝을 따로 받았다.
안무 창작에서부터 연습, 무대 공연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만 4개월. 팀원 11명 전원이 중고교생이었기 때문에 연습시간의 제약도 있었고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팀원 박지우(16)양은 “시험 기간과 연습 과정이 겹쳐 부모님과 갈등을 빚었지만, 책잡히지 않기 위해 연습이 끝나자마자 집에 돌아와 공부를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앞으로도 세월호 참사 등을 소재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안무로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이 팀의 맏형인 전희찬(19)군은 “관중에서 터져 나오는 탄식 소리를 듣고 우리의 춤이 많은 이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며 “어른들은 '춤으로 뭘 할 수 있겠냐'며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곤 하지만, 이번 무대를 통해 그 시각이 조금이라도 바뀐다면 보람찰 것이다”고 당차게 말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고가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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