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 염원 깃발·나무십자가 들고 단원고서 팽목항까지 도보 순례
진상규명·특별법제정 등 호소, 내달 교황 집전 대전 미사도 참석
“아무리 힘들다 해도 우리 아들이 죽어갈 때 느꼈을 고통만큼이야 하겠습니까.”
750여㎞ 1,900리길을 30도가 넘는 폭염 속에 40여일 동안 걸어서 가려는 두 아버지와 누나가 있다. 1년에 등산 한 두 차례 해본 것이 전부라는 이들의 시도는 무모해 보이지만 얼굴에선 조금의 걱정이나 두려움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결연한 의지의 이들은 단원고 2학년 8반 고 이승현(17)군의 아버지 이호진(56)씨, 누나 아름(25)씨 부녀와 2학년 4반 고 김웅기(17)군의 아버지 김학일(52)씨다.
이씨 부녀 등은 8일 오후 경기 안산 단원고를 출발해 진도 팽목항까지 도보 순례 대장정 길에 올랐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실 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아직도 바다 속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실종자 11명을 잊지 말 것을 당부하기 위해서다. 이씨는 “팽목항에 있는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이 두 달 전 우리들의 마음과 똑같을 겁니다. 그들에 대한 기억이 점차 잊혀져 가는 것이 너무도 안타까워 도보 순례에 나서기로 마음먹었어요”라고 취지를 밝혔다.
이들은 국도를 따라 하루 20~25㎞씩 걸을 계획이다. 잠은 도착 지역 성당에서 신세를 지고 여의치 않을 경우 노숙도 고려하고 있다. 간단한 세면도구와 갈아입을 옷가지를 담은 가방 2개와 ‘하루 속히 가족 품으로’라고 적힌 깃발 1개, 그리고 1m30㎝ 크기의 나무로 만든 십자가 1개까지 짐 무게만 15㎏이다. 천주교 신자인 김씨와 예비 신자인 이씨는 “승현이와 웅기의 생명이 끊어질 때 고통을 생각하면 1,000㎞, 1만㎞라도 못가겠습니까”라면서 “아들과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이 방법을 택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두 아버지는 아들 발견 100일째 되는 날인 8월 6일과 7일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아들들을 추모하는 노제를 계획하고 있다. 동행하는 승현군 누나 아름씨는 대장정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 페이스북 등 SNS에 수시로 올리며 자신들의 뜻을 전할 예정이다.
이들의 대장정은 팽목항이 끝이 아니다. 팽목항에 도착해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한 후 이들은 또다시 발걸음을 옮겨 15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대전월드컵경기장의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 참석할 계획이다. “먼 발치에서 나마 교황을 보고 아들들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허락만 된다면 40여 일간 짊어지고 다녔던 십자가를 교황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이씨 등은 출발에 앞서 아들이 공부했던 교실 책상에 앉아 한참을 기도한 후 학생과 교사, 수녀들의 배웅 속에 고행의 대장정 길에 올랐다. 그러면서 이들은 “국회 국정조사를 보니 잘못된 부분을 바꿔나가려는 의지는 없이 ‘전례가 없다’는 얘기만 하고 있어 화가 납니다”라며 “유족의 입장에서 진상 규명과 특별법을 제정해야지 정치적 입장만 내세운다면 결국 국정조사는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산=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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