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투표 이틀 전 마크롱 캠프 해킹돼
이메일 등 자료 대량 트위터 유출
가짜뉴스 퍼지는데 속수무책
#2
문서 편집 등 러 개입 흔적 곳곳에
美 온라인 극우가 적극적 유포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7일)에서 당선이 유력한 ‘앙마르슈!(전진)’의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를 노린 해킹의 배후에 러시아는 물론 미국 극우단체까지 포진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이에 마린 르펜 국민전선(FN) 후보가 프랑스 대통령으로 당선되길 원하는 국제적 극우연대가 가동됐다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5일(현지시간) 밤 마크롱 캠프 관계자들의 개인 이메일과 회계자료가 포함된 수만건의 내부 문서가 대량 해킹돼 온라인상에 유포됐다.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는 곧장 트위터에 문서 링크를 게시했는데, 지난달 24일까지 이메일과 사진, 첨부서류 등이 담긴 유출 자료 분량은 9기가바이트(GB)에 달했다. 앙마르슈 측은 이날 성명을 내고 “조직적 해킹은 지난해 미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이메일 탈취 사건을 연상케 한다”며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해킹 문서에는 불법 의혹에 휩싸일 만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유출 시점을 보면 마크롱 후보를 겨냥한 해킹 주체의 의도가 분명해진다. 프랑스는 대선 투표 마감 44시간 전 모든 공식 선거운동과 언론 보도를 금지하는 ‘블랙아웃’ 규정을 두고 있다. 이날 밤 늦게 마크롱 관련 자료를 공개한 뒤 거짓정보가 ‘가짜뉴스’로 확산돼도 후보 측이 적극 방어할 수 없는 허점을 노린 것이다. 실제 마크롱 캠프는 선거운동이 종료되는 이날 자정 4,5분 전에야 부랴부랴 긴급 성명을 내야 했다. 6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선거관리위원회, 정보기관이 앞다퉈 결선투표 이후 조사 및 수사 방침을 밝혔으나 프랑스 유력 언론들과 정부도 금지 규정에 막혀 유출 논란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해커 측이 막판 판세 동요를 이유로 반세기전 만든 법을 오히려 역이용한 셈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마크롱에게 정치적 타격을 극대화하려는 계산된 행동”이라고 해석했다.
해커들의 노림수는 먹혀들고 있다. 해당 자료는 마크롱에 반대하는 글로벌 극우세력 주도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소셜미디어를 타고 퍼지면서 가짜뉴스로 둔갑할 조짐이 뚜렷하다. 해킹 배후로는 러시아가 1순위에 꼽힌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유출 문서에서 엑셀 러시아어 버전이나 러시아어 사용 컴퓨터로 편집된 흔적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한 문건에서는 모스크바에 기반을 둔 한 통신회사의 엔지니어가 편집에 관여한 정황도 드러났는데, 이 업체는 러시아 정부기관 여럿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미 대선에서 클린턴 후보에게 불리한 내용을 담은 이메일을 해킹한 뒤 위키리크스를 통해 폭로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의심을 샀다. 미 정보당국은 현재 러시아 개입설을 기정사실화한 상태다. 프랑스 대선에서도 지난달 1차 투표에 앞서 클린턴 해킹 작전을 실행한 러시아 해커 조직 ‘폰 스톰’이 마크롱 캠프에 대한 피싱 공격을 시도했다는 의혹이 불거졌었다.
미 극우파들도 문건 확산에 적극 가세하고 있다. ‘#마크롱리크스’라는 해시태그를 사용해 마크롱 캠프 자료를 가장 먼저 트위터로 퍼 나른 당사자는 극우잡지 ‘반란(The Rebel)’ 소속의 논객 잭 소포비엑으로 밝혀졌고, 해당 해시태그는 3시간 30 분 만에 무려 4만7,000명이 접속할 만큼 삽시간에 퍼졌다. 또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를 적극 지원한 극우 사이트 ‘4chan’은 현재 프랑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마크롱의 조세피난처 계좌 보유 의혹을 처음 폭로한 곳이다. NYT는 “가짜뉴스로 의심되는 소셜미디어상 정치적 메시지의 절반 가량이 영어로 쓰였다”며 “전 세계 극우파들이 온라인을 활용해 마크롱을 무너뜨리기 위한 전략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는 6일 오전 캐나다 인근 프랑스령 생피에르미클롱 군도를 시작으로 전국 6만7,000여개 투표소에서 일제히 진행됐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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