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청탁 금지의 본질은 특권 없애기
모호한 ‘직무 관련성’ 등 보완해야
인맥 대신 실력으로 승부하는 사회
살아오면서 네댓 번 촌지를 준 경험이 있다. 그 대상은 하나같이 김영란법이 부정청탁의 소지가 크다고 본 ‘공직자 등’이었다. 학부모에게 교사는 확실한 갑이다. 문제아를 둔 경우라면 더더욱. 초등학교 3학년 때 전학한 아들이 바뀐 환경에 적응 못해 자주 말썽을 피웠다. 담임교사도 짜증이 났던 모양이다. 이를 눈치 챈 아내가 면담을 요청했다. 그 전날 아내와 심각한 대화를 나눴다. “빈 손으로 갈 거냐, 선물을 들고 갈 거냐.” 결국 아내는 선물을 챙겨 들고 학교를 찾았다.
환자와 그 가족에게 의사는 하나님이다. 특히 중환자일수록. 연로하신 부친이 병원 신세를 자주 지다 보니 주치의에게 두세 번 촌지를 줬다. 3년 전 부친이 대학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담당 교수를 찾아가 양주를 건넸다. “잘 부탁 드린다”는 인사와 함께.
대학원생에게 교수는 생사여탈권을 쥔 왕이다. 모 언론대학원 석사논문 심사 때의 촌지 제공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선배가 부르더니, “심사가 끝나면 저녁 대접과 함께 성의 표시를 해야 한다”며 구체적 액수까지 귀띔했다. 우리사회 최고 지성이라는 교수들이 제자의 촌지를 받는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주변에선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관행이라며 담담한 반응이었다. 논문심사가 예정된 대학원생 셋이 모여 돈을 갹출했다. 심사위원 세 분을 위해 30만원 상품권이 든 봉투 3개를 준비하고 강남의 고급 일식집을 예약했다. 100만원 가까이 나온 일식집 비용은 카드로 3분의 1씩 결제했다.
‘공직자 등’에 포함된 교사ㆍ교수ㆍ의사의 촌지 수수는 어찌 보면 애교 수준이다. ‘큰 도둑’이 공직사회에 많다는 건 새삼스럽지 않다. 인허가권을 쥐고 국민 위에 슈퍼갑으로 군림하는 공직자와 ‘공직사회의 갑’으로 통하는 권력기관 종사자들이다.
졸지에 ‘공직자 등’이 된 언론인은? 언론사에서 일하며 많은 특혜와 편익을 누려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개인과 회사의 이익을 공익으로 포장하며 공평무사한 언관의 역할을 저버리기도 했다. 언론과 날카롭게 맞섰던 노무현 대통령은 “안방이 단결하면 머슴이 괴롭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힘을 가진 청와대 검찰 국정원 등 권력기관과 언론이 유착하면 서민들만 힘들어진다는 얘기다. 일부 힘센 신문사가 언론의 자유를 무기로 특정 정치세력과 손잡고 권력을 추구했던 것도 사실이다. 수조 원의 혈세를 집어삼킨 대우조선해양 비리는 청와대 관료 언론 등 권언유착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9월 28일 김영란법이 시행에 들어갔다. 일부 형평성이 의문이고, 모호한 법 규정 탓에 당분간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해충돌방지 조항의 복원, 인터넷포털 시민단체 변호사 등으로의 확대 적용, 언론인에게만 지나치게 넓게 인정한 직무 관련 범위 조정 등도 과제다. 하지만 사회상규(常規) 등을 둘러싼 일부 혼선을 놓고 실패한 법으로 몰아가려는 움직임은 바람직하지 않다. 반(反)부패 차원에서 전격 단행된 금융실명제를 생각해 보라. 나라가 곧 결딴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으나 막상 시행되니 탈세 등 경제비리를 없애는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유권자에 대한 향응제공을 금지한 공직선거법도 마찬가지다. ‘선거운동을 원천적으로 막는 법’이라는 비판이 많았으나 결국 깨끗한 선거풍토가 자리잡는 데 기여했다.
김영란법은 특혜와 편의를 매개로 한 기득권층의 결탁을 막기 위한 법이다. ‘특권해체법’인 셈이다. 이 법이 안착하면 굳이 인맥을 넓히려 시간과 돈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 인맥이 아닌 실력으로 승부하는 사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은 언론에게도 기득권층에 대한 정보 의존도를 낮추고 국민 삶 깊숙이 들어가 좋은 기사를 발굴할 수 있는 기회다. 부당한 특권과 편의는 그 수혜자도 불행하게 만든다. 국민이 다 불행한데 기득권층만 행복할 수는 없다. 한국사회가 학교 병원 관공서에서 잘못된 관행과 부패를 청산하는 행진을 시작했다. 국민 행복지수를 높여 선진국을 앞당기는 지름길이 되리라 믿는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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