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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문화융성 무색하게 하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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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문화융성 무색하게 하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입력
2016.10.1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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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도종환 의원이 의사진행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도종환 의원이 의사진행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주의ㆍ경계해야 할 문화예술인 명단을 만들어 보관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 숫자가 무려 9,473명에 이른다고 한다. 정부가 한편으로는 문화융성을 외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예술계를 적대시해 온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명단을 아무 이유 없이 만들지는 않았을 테니 결국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불이익을 주려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한국일보 취재 결과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청와대가 만들어 문화체육관광부로 내려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에 서명한 문화인, 세월호 시국선언에 참여한 문학인,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지지 예술인, 서울시장 선거 당시 박원순 후보 지지 선언 참여자 등으로 분류돼 있다. 정치적 잣대가 적용된 게 틀림없다.

블랙리스트의 존재는 도종환 의원이 앞서 10일 폭로했다. 도 의원이 공개한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권영빈 당시 위원장이 “지원해 줄 수 없도록 판단되는 ‘리스트’가 있다”고 했는데 이는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확인해 준 발언이다. 권 위원장은 또 “심의를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책임 심의위원을 선정하면 해당기관에서 그들의 신상을 파악해 ‘된다, 안 된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말해 심사위원 선정 또한 정부 입김 아래 있음을 시사했다.

연출가 이윤택이 지난 대선에서 고교 동창인 문재인 후보 지지 연설을 해 그의 작품 ‘꽃을 바치는 시간’이 문화예술위원회 지원 대상에서 탈락했고 연출가 박근형이 이전 작품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부정적으로 다룬 바람에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고도 포기 종용을 받았다는 등의 소문은 진작부터 나돌았다.

정부가 입맛에 맞지 않은 문화예술인을 따로 분류하는 것은 정치적 잣대로 편을 가르는 옹졸한 처사이자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문화예술에서 비유와 풍자, 비판이 중요하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명작 치고 현실 비판과 성찰을 담지 않은 게 거의 없다는 사실쯤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문화예술인들이 사회 현실에 적극적 목소리를 내는 것도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런 현실도 모르면서 내 편, 네 편을 갈라 왔다니 참으로 기가 막힌다. 정부는 우선 블랙리스트의 내용을 공개하고,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또 어떤 의도로 그런 명단을 작성했는지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 문화융성이나 문화창조는 말로 되는 게 아니라 창의와 자유를 구가할 사회적 토양을 조성해야만 달성 가능한 목표임을 정부가 지금이라도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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