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5월 엄마와 함께 공부하러 가던 여섯 살 김태완 군이 황산 테러를 당했다. 몸 절반에 심한 화상을 입고 49일을 견디다 결국 숨졌다. 아는 아저씨를 용의자로 지목했으나 엄마가 진술을 유도했다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했다. 가족은 생업을 포기한 채 15년간 각종 증거를 제시하며 재수사를 촉구했다. 시민 5만여명이 재수사 청원에 서명하면서 2015년 7월 일명 ‘태완이법’이 만들어졌다.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는 살인범에 대해 공소시효를 없애는 내용이었다. 태완군 공소시효(15년)가 끝난 지 한 달 후였다.
▦ 최근 개봉된 다큐멘터리 영화 ‘김광석’이 21년 전 그의 죽음에 타살 의혹을 제기했다. 김광석 외동딸이 10년 전 사망했으나 엄마 서모씨가 이 사실을 숨긴 채 딸 몫인 저작권료를 챙겨온 사실도 드러났다. ‘김광석법’ 청원 운동이 불붙었다. 공소시효가 끝난 살인사건이라도 새 단서가 발견되면 재수사할 수 있도록 하자는 법안이다. 소설가 이외수, 배우 문성근, 가수 전인권 등 문화계 인사들도 입법 청원에 가세했다. 안민석, 진선미 의원 등이 조만간 관련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 1998년 대구에서 한 여대생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했다. 유족의 끈질긴 요구로 2013년 재수사에 나선 결과 성폭행 사망사건으로 드러났다. 스리랑카인 범인은 최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공소시효 10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공소시효란 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질러도 일정기간이 지나면 처벌할 수 없도록 한 제도다. 범죄 발생 후 오랜 시간이 지나면 증거 신뢰성이 떨어지고 장기 수사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늘어난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DNA 분석과 지문 감식 발달로 그 취지가 많이 퇴색했다.
▦ 대중스타가 법 개정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하다. 가수 신해철이 2014년 의료사고로 숨진 이후 의료분쟁 조정절차를 개선하는 ‘신해철법’이 제정됐다. 배우 김부선씨가 아파트 회계비리를 폭로하면서 공동주택 회계감사를 강화하는 ‘김부선법’도 만들어졌다. 표현의 자유 논란으로 무산되긴 했으나 2008년 최진실씨 자살 이후 인터넷 악플을 처벌하는 ‘최진실법’ 제정도 추진됐다. 수많은 흉악범죄가 공소시효 탓에 면죄부를 받는 건 정의롭지 못하다. 그렇다고 법 체계가 특정사건에 대한 여론과 국민 법 감정에 휘둘려서도 안 된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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