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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이 라스베이거스 쇼 무대냐" 화려한 복원 공사 뜨거운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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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이 라스베이거스 쇼 무대냐" 화려한 복원 공사 뜨거운 논쟁

입력
2015.08.2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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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경기 진작 도모… 관광수입 늘리려 거액 투입

공연 무대 사용에 반발 확산 "유물을 테마파크 유흥에 쓰나"

6월 초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에서 복원된 맹수 엘리베이터 시연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로마=AP 연합뉴스
6월 초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에서 복원된 맹수 엘리베이터 시연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로마=AP 연합뉴스

이탈리아 로마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웅장한 콜로세움은 외관만 보고 스쳐 지나가기엔 너무나 매혹적이다. 서기 70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연극, 검투사 경기 등을 진행할 목적으로 건설한 이 원형 경기장은 온천 침전물 대리석이 527m에 달하는 거대한 외관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름 자체가 ‘거대한 건축물’인 이곳은 검투사와 맹수의 결투, 그리스도교들에 대한 박해 등 잔혹한 인간의 유희가 남긴 핏자국들이 2,000년 동안 선연히 남아 있는 역사적인 장소이다.

8만여명의 인파를 수용할 수 있었던 콜로세움은 그 동안 수많은 지진과 전쟁, 약탈에 의해 대부분의 외벽과 내부, 지하 공간 등이 훼손됐다. 이탈리아 정부는 2013년부터 본격적인 복원 작업에 들어갔으며, 내년 바닥공사를 마지막으로 완전히 새롭게 단장한 콜로세움을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관광부국’노리는 이탈리아 복원 안간힘

공사 막바지에 접어든 콜로세움 복원을 놓고 느닷없이 뜨거운 논쟁이 일고 있다. 경제난을 겪고 있는 이탈리아 정부가 국내총생산(GDP)의 6%에 달하는 관광수입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인류의 거대한 문화유산인 콜로세움을 미국의 ‘라스베이거스 쇼 무대’처럼 휘황찬란하게 꾸미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

고고학자들은 “역사적 현장을 이용해 이탈리아 정부가 돈을 벌려 한다”라며 과장되지 않게 원형에 가까운 복원을 주문하고 있지만, 이탈리아는 쿠웨이트 정부로부터 2,110만유로(약 275억8,800만원)를 지원받으면서까지 ‘로두스 마그누스’라 불리는 연병장과 지하터널을 되살리는 등 콜로세움의 ‘화려한 귀환’을 고집하고 있다.

지난 4일에는 다리오 프란시스치니 이탈리아 문화부 장관은 1,800만유로(235억3,500만원)를 콜로세움 바닥 복원공사에 추가로 투자하기로 결정했다고 공표했다. 이를 계기로 기념비적인 장소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복원을 마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끓어 올랐고, 정부 측에선 최대한 화려하게 개장을 해야 한다고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올 6월초에는 1,500년 전 소실됐던 맹수 엘리베이터가 복원돼 미디어에 공개되기도 했다. 총 2,000만유로(261억5,000만원)가 투입된 이 프로젝트를 통해 맹수나 검투사를 지하 7.3m 아래 공간으로부터 콜로세움 중앙 무대로 끌어올리는 28개 승강기를 말끔하게 되살렸다. 이탈리아 장브 문화재복원 담당자들은 “콜로세움의 현실감을 가장 확실히 전달해 줄 작품”이라고 자부하고 있는데, 이 승강기들은 첫 등장부터 마술사의 대형 쇼를 방불케 하는 성능을 발휘했다. 한 현대 무용가가 동물 복장을 하고 나와 그럴듯한 포즈로 도르래를 끌어 올리는 오프닝 행사를 진행했고, 사자 등 맹수들이 홀연히 바닥에서 솟아나오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검투사 유혈장면만 치중… “역사에 대한 배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탈리아가 이렇듯 ‘흥행’을 노리고 콜로세움의 복원 사업에 거액을 쏟아 붓는 상황에 대해 “역사에 대한 배신이며 재앙이다”라고 혹평했다. 신문이 지적하는 콜로세움 복원의 문제점은 복원사업이 콜로세움 역사의 한 단편만을 되살리고 있다는 것이다. 고대 로마에 그치지 않고 르네상스 시절까지 오랜 세월 민중의 집회 장소, 혹은 주술적인 모임의 현장으로 사용돼 왔기 때문에 콜로세움을 ‘검투사의 공간’만으로 복원하는 것은 역사 왜곡이라는 것이다.

가디언은 “콜로세움을 찾는 관광객들이 오직 드라마 ‘로마’나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봤던 화려하고 액션이 넘치는 장면에만 흥미를 느낄 것이라고 이탈리아 정부는 지레 짐작하고 있다”라며 “거액을 들여 복원하는 검투 시설과 바닥을 복원하면 앞으로 관람객들은 무대 바닥 밑의 각 층을 내려다 보며 느낄 수 있었던 콜로세움의 웅장함을 많이 놓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술 비평가인 조나단 존스는 가디언에 투고한 칼럼에서 “르네상스 시대 조각가인 벤베누토 첼리니는 콜로세움을 주술자들의 회합 장소로 묘사했으며, 18세기 작가들은 주로 여행자들이 집결해 정보를 나누던 곳으로 표현했다”라며 “영화의 이미지에만 치중한 복원으로 관광객을 모아 돈을 벌려는 속셈이다”고 비판했다.

“실제 공연무대로 사용” 계획에 전문가들 반발

영 일간 인디펜던트는 프란시스치니 이탈리아 문화부 장관이 공을 들이는 바닥복원 사업이 사실상 라스베이거스 쇼와 같은 대중 콘서트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신문은 복원 비용이 단순히 콜로세움의 복원과 설비 유지뿐 아니라 공연 장비와 시설 신축에도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장관에게 던졌는데, 장관은 “절대 라스베이거스 쇼의 분위기는 되지 않을 것”이라며 “축구 경기나 록 콘서트가 콜로세움에서 열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공연 계획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프란시스치니 장관은 “세네카의 비극 등 전통극이나 발레공연 등에는 문호를 열 것”이라는 말을 덧붙여 경우에 따라 콜로세움이 허용하는 ‘쇼’의 범위를 원래 콜로세움에서 벌어지던 이벤트 외에도 차츰 넓힐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는 공연무대로 활용하거나 검투사의 이미지에 치중한 복원 사업이 모두 관광산업 증대라는 세속적인 목표에 집중한 것임을 실토한 것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페르디난도 대학 토마소 몬타나리 교수는 “과거의 유물을 현대의 테마파크식 하급 유흥문화로 재생산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분개했다. 알레산드로 핀투치 이탈리아 고고학자 연합회 회장은 “이탈리아 국내에 복원이 시급한 문화재가 한 둘이 아닌데 오직 콜로세움에만 이토록 천문학적인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탈리아 유력지 라레푸불리카의 논설위원 프란시스코 멀로는 콜로세움의 복원에 대해 “그건 복원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화장품을 덧씌우는 것일 뿐이다”라고 꼬집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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