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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이 시대의 자유여행법

입력
2015.08.24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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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기 전에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하는 이가 나만은 아닐 것이다. 얼마 전 일본여행 계획을 세우면서도 그랬다. 검색창에 지명의 앞글자만 입력해도 검색어들이 자동 완성된다. 그 중 제일 위에 뜨는 ‘xx자유여행’을 클릭한다. 그러면 또 다시 ‘xx자유여행 일정’, ‘xx자유여행 코스’등의 연관검색어들이 좌르륵 나타난다. 그렇게 찾은 정보를 두어 페이지쯤 훑어보면 미지의 도시가 어떤 곳인지 윤곽이 잡히는 것도 같다. 그리고 자유여행이란 곧 ‘갈 곳, 잘 곳, 먹을 곳’을 스스로 결정하는 여행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즉 그 세 가지만 결정하고 나면 여행 계획 세우기가 다 끝난 것처럼 느껴지는 거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되는 것은 이미 그곳을 다녀온 이들이 작성해놓은 블로그 포스트다. 여행지를 이미 경험해본 ‘선배’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내 경우 오랜 고민 끝에 한 숙박업소를 골라 예약했지만 위생상태가 좋지 않다는 블로그의 평을 뒤늦게 읽고는 놀라서 예약을 취소한 적도 있다. 몇 명의 블로거가 ‘다시 와도 묵고 싶다’고 기술한 곳을 엄선하여 새로 예약했음은 물론이다. 그들이 올려놓은 고해상도의 선명한 사진들은 결정에 큰 도움이 되었다. 관광명소의 이름과 근처 맛있는 식당 이름을 수첩에 받아 적고 나서야 비로소 한숨을 돌렸다.

드디어 여행지로 떠나던 날,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선배’들이 알려준 대로 공항에서 모노레일을 타고 숙소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모노레일 타는 방향을 몰라 잠시 멈칫거렸지만 손에 꼭 쥔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니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호텔 건물 로비에는 아무 것도 없이 승강기 한 대만 놓여 있었는데 일행이 당황할 때 내가 아무렇지 않았던 건 프런트 데스크가 1층이 아니라 10층에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체크인을 하고 객실에 들어섰다.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 빛깔과 작은 배 몇 대가 정박 중인 항구의 풍경은 ‘선배’들의 블로그에서 여러 번 본 것이었다. 왠지 안도가 되었다.

어떤 관광지에 가도 상황은 비슷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시립 박물관 근처에 몇 군데 식당이 있긴 하지만 모두 비싸기만 하고 맛이 없으니 힘들더라도 몇 블록 걸어서 A식당에 가야 한다는 것. 같은 골목에 여러 유사한 점포가 있지만 꼭 그 집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 그곳에 가면 종업원이 권하는 대로 세트 메뉴를 시키면 안 되고 이러저러한 단품을 시켜 나눠먹는 것이 가성비가 가장 좋다는 것. 식사를 마치고 나면 길을 건너가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하는데 즐비한 가게 중에서 세 번째 가게가 가장 친절하고 양도 많이 준다는 것.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나면 그 앞 시장에 가 쇼핑을 해야 한다는 것. 찬찬히 돌아볼 필요는 없으나 이러저러한 제품들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저렴하니 선물용으로 구입할만하다는 것.

그 기억할만한 조언에 따라 나는 일행을 이끌고 재빠르게 움직였다. 박물관을 나와 A식당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무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간신히 찾아간 식당은 그러나 문이 닫혀 있었다. 다들 배가 고프니 아무 데나 들어가고 싶은 눈치였다. 근처 다른 식당은 비싸고 맛없으므로 ‘절대 비추’라는 온라인의 충고가 선명히 떠올랐다. 나는 단호히 안 된다고 소리치고는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을 시작했다. 와이파이는 잡히지 않고 태양만이 사정없이 내리쬈다.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기어이 내가 여기까지 걸어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전화기를 집어넣고 눈에 보이는 아무 식당에나 들어갔다. 아무리 검색해도 어떤 블로그에도 나오지 않는 그곳의 닭튀김은 내 인생 최고의 맛이었음을 고백한다.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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