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영리하다. 모든 것을 산업으로 변모시키고, 거기서 이윤을 창출한다. 사랑도 산업이고, 미움도 산업이며, 자유도 산업이다. 그리고 불안. 끝없이 열거될 수 있는 이 산업의 목록에서 오늘날의 하이퍼-자본주의가 각별하게 편애하는 산업 분야다. 학생의 불안, 취업준비생의 불안, 군인의 불안, 연인의 불안, 어머니의 불안…. 불안은 도처에 창궐해 있다. 테러, 전쟁, 전염병, 사고, 재난, 성공, 때로는 실패에 대한 불안으로 모두가 불안하다.
슬로베니아 출신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레나타 살레츨의 ‘불안들’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갱신되며 우리의 삶을 잠식하는 불안이 실은 거대한 자본주의적 기획이며, 미디어는 철저히 이에 복무하는 방식으로 운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는 미디어가 불안을 어떻게 재현하는지 살펴봄으로써 불안이 오늘날 자본주의사회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분석한다. 실제 사건과 다양한 대중문화 텍스트들이 탄탄하게 논리를 받쳐주는 덕분에 곳곳에서 정신분석학적 통찰이 번득인다.
저자는 우리를 점거한 불안의 정체와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프로이트의 저 잘 알려진 거세위협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불안으로부터 시작해, 불안은 대상의 결여가 아니라 결여의 결여 즉 결여의 자리에 대상이 출현함으로써 유발된다는 라캉의 불안 개념을 승계한다. “불안이란 주체가 자신의 분열을 다루는 방식, 그리고 사회를 특징짓는 적대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살펴보는 데” 이 책의 핵심이 있다. 전쟁, 노동, 사랑, 모성, 아버지의 권위라는 다섯 가지 테마는 불안이 강하게 지배력을 행사하는 분야로, 저자의 심층적 분석대상이 된다.
오늘날 기업들은 물질로서의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 즉 욕망을 판다. ‘우리 물건을 사지 않아도 좋다, 다만 욕망하면 된다’는 새로운 마케팅 전략에 따라 빈곤층에게 무료로 물건을 나눠주거나 ‘짝퉁’을 홍보의 일환으로 무한 허용한다. 회사에 중요한 것은 단발적 판매가 아닌 고객과 평생 관계를 수립해 평생 동안 공급자가 되는 것이며, 그들이 미래에 욕망할 것을 알아내는 것이다. 자본은 자아라는 것이 계속 전개되고 갱신되며 개정되는 이야기라고 끊임없이 설득하면서, 제대로 된 부모라면 아이도 그런 자아를 가진 주체로 키워야 한다고 강제한다. 무엇을 하고 있어도 불안한 부모를 만들어낸 편집증적 양육문화는 바로 자본이 구사한 그 전략의 결과물이다.
싱글 여성의 생존 가이드, 직장 정글에서 살아남는 법, 다이어트 전쟁에서 생존하기 등등 모든 주제에 생존법이라는 타이틀을 달아 유포하는 미디어는 오늘날 “당신이 무엇을 한다 하더라도 틀릴 것이다. 우리의 조언을 따라 다시 하는 게 낫다!”는 새로운 모토를 추구하고 있다. 호감이 갈 만한 자기 이미지를 자유롭게 창조해낼 수 있다는 만연한 생각이 도리어 우리 시대 특유의 불안을 만들어내는 역설. 자유로운 주체는 불확정성, 자유에 수반되는 ‘가능성의 가능성’ 때문에 불안하다. 바로 자유의 독재다.
그러나 불안은 과연 퇴치해야만 하는 신경증인 걸까? 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불안은 인간의 본질적 조건이며, 사람들이 세계와 관계를 맺는 데 매개가 되는 조건”이다. 또한 불안은 “주체가 대타자, 즉 상징질서와 자신을 특징짓는 결여를 다루는 방법”이며, 주체를 외상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신호다. 불안에는 “주체를 준비 상태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고, 이는 주체가 신경쇠약이나 트라우마를 유발할 만한 사건을 맞닥뜨리는 경우 무기력해지거나 놀라는 정도를 줄여줄 수 있다.” 불안이 없는 삶이야말로 불안한 삶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은 한낱 소비자이자 소시민인 우리가 자본주의의 횡포에 맞서는 저항의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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