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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도우미에게 영업까지… 상조회사들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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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도우미에게 영업까지… 상조회사들 '갑질'

입력
2015.02.2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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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할 때 회사상품 가입 강요하고, 유니폼 비용·교육비도 멋대로 전가

일부는 장례도우미를 자영업자 분류… 근로계약서도 작성 안 해 법에 위반

서울 강동구 길동에 사는 주부 김모(49)씨는 이달 초 “장례식장에서 서빙, 상차림 등 도우미 일을 하면 하루 10만원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구인광고를 보고 보람상조 한 지점을 찾았다. 하지만 김씨는 황당한 업무조건을 듣고 이내 발길을 돌렸다. 회사 관계자는 장례도우미가 되려면 의무적으로 자사의 상조상품에 가입해야 하고, 영업직(상조ㆍ웨딩ㆍ크루즈 상품판매)을 병행하지 않으면 도우미 업무를 할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23일 “아무래도 이상해 근로계약서를 보여달라고 했지만 ‘근로계약서는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상조회사 하면 해약환급금 거부, 약정서비스 미이행 등 소비자와 관련한 피해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상조회사를 대신해 실질적 업무를 담당하는 ‘장례도우미(의전관리사)’에게 부당한 근로조건을 강요하는 등 내부에서 벌이는 ‘갑질’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업무를 할당 받기 위한 선제조건으로 각종 상품을 구매해야 하는 등 불합리한 노사관행이 업계 전반에 뿌리 깊게 박혀 있어 제대로 된 관리ㆍ감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김씨의 경우 보람상조 측이 ‘사원등록’ 명목으로 신입 장례도우미에게 월 3만원(130개월 만기)짜리 상조상품 가입을 강요했다. 이 밖에 교육비 12만원(당일 교육비 4만원, 1박 교육비 8만원), 유니폼비 8만원 등도 직원에게 전가했다. 이 회사는 또 장례도우미들에게 영업직 병행을 강요할 뿐만 아니라 실적을 올리지 못할 경우 불이익을 주고 있다. 보람상조에서 4년째 장례도우미로 일하고 있는 신모(47ㆍ여)씨는 “회사는 상품계약 시 발생하는 40만~50만원의 영업수당을 24개월로 분할해 해당 직원에게 지급하는데, 실적이 없는 달에는 이 수당을 주지 않는다”며 “이미 발생한 수당을 받기 위해 새 실적을 올려야 하는 희한한 구조”라고 비판했다.

다른 상조회사들의 업무환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프리드라이프의 장례도우미 이모(51ㆍ여)씨는 “입사 전 8시간 근무 기준으로 일당 8만원을 주겠다고 했던 사측이 영업실적이 없는 달에는 일당을 7만원밖에 주지 않았다”며 “서비스 명목으로 2시간 연장근무도 강요해 실제로는 10시간 근무에 7만원을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밝혔다. 업계 순위 1,2위를 다투는 두 회사의 근무환경이 기준점이 돼버린 탓에 다른 상조회사들도 비슷한 강도의 업무조건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관행에 대해 프리드라이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아예 설계사(영업직)로 입사한 이들만 장례도우미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회사방침을 바꿨고 연장근로 금지 등 변경사항을 교육했으나 아직 본사와 지사 사이에 온도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해명했다. 보람상조 관계자는 “본사 차원에서 상품판매 병행, 자사 상조상품 가입강요 등 지점에서 벌어지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기 위해 교육과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라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상조회사와 장례도우미 사이에 근로계약서가 아예 없어 가혹한 노동조건에도 법의 보호를 받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로 상조회사 일부 지점들은 장례도우미를 자영업자로 분류해 근로계약서 대신 위촉계약서를 작성시키고 있다. 하지만 노동법 전문가들은 장례도우미도 근로자로 봐야 하고 상조회사의 근로관행 역시 근로기준법에 저촉된다고 지적했다. 로시컴 노동법률사무소의 정풍용 노무사는 “사업장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노동력을 제공하고, 회사와 계약 시 기본급을 설정하기 때문에 장례도우미는 일반근로자 요건을 충족한다”며 “따라서 근로계약서를 기피하는 행위는 근로기준법 제17조에 위배된다”고 설명했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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