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억 들여 90여점 만들었으나
대부분 관리 부실에 흉물로 전락
철거 민원까지… 혈세 낭비 논란
3일 오전 경기 안양시 비산동 학운공원. 최고 높이 12m, 연면적 150여㎡ 규모의 낡은 철골ㆍ목조 구조물이 공원 숲 속에서 눈에 들어왔다. 독일의 작가 라움라보어가 2010년 7~9월 제3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ㆍAnyang Public Art Project) 때 6억6,500만원을 들여 설치한‘오픈 하우스’다. 국내 방 문화에 영감을 얻어 온실, 사랑방 등 19개 방을 쌓아 올린 고가의 예술작품이지만, 5년이 지난 현재는 주민이 철거를 원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비바람을 맞고 외관이 썩어 보기 흉한데다 작품 안에서 성범죄나 청소년 비행이 있었다는 소문이 돌면서다.
안양시가 작품 의도를 훼손하면서까지 폐쇄회로(CC)TV와 철문 등을 설치하고 각 방에 자물쇠를 달아 출입을 막고 있으나 주민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서모(67)씨는 “방에서 몰래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청소년들이 많았다”며 “건물 자체가 산뜻한 공원의 이미지와 맞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공원 인근 한 아파트 주민들은 2013년 말 전체 952세대 가운데 650세대(68%)의 동의를 받아 시에 철거 민원을 내기도 했다. 안양시 관계자는 “내년쯤 일몰프로젝트를 진행해 오픈 하우스를 없애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안양시가 100억원 넘게 들여 공원과 광장 등에 설치한 일부 작품들이 철거냐, 보존이냐 기로에 서 있다. 예술적 가치가 시민들의 일상의 삶과 괴리되면서 애초 의도와 다른 문제점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탓이다.
안양시가 2005년 제1회 APAP를 시작으로 2007년 제2회, 2010년 제3회, 2013년 제4회 APAP 사업을 진행해 제작ㆍ전시한 작품은 모두 97점이다. 작품 설치와 주변 환경 정비에만 무려 131억여원이 들었다.
하지만 이 가운데 9억6,200만원 상당의 작품 17점이 이미 없어졌다. 철거요구에 시달리는 ‘오픈 하우스’처럼 관리가 부실했거나 주민들의 삶에 녹아 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역의 자연과 문화, 역사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공공예술을 지향했지만, 혈세만 낭비한 꼴이 된 셈이다.
평촌 안양예술공원에 1억7,200만원이 투입돼 설치됐던 이탈리아 작가 엘라스 티코의 작품 ‘오징어 정거장’ 역시 이용자 안전 문제로 지난해 초 400여만원을 들여 철거됐다. 1,500만원을 들여 안양예술공원에 놓였던 ‘열반의 문’도 현재는 볼 수 없다.
심규순 안양시의원은 “찾는 이도 없고 안전사고 등의 우려를 준다면 이는 예술품이 아니라 위험물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양시도 고가의 작품을 만들었다가 철거하는 데 대한 비판을 의식, 추가 작품 설치는 지양하고 있다. 안양문화예술재단 관계자는 “제기되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신규 작품의 제작을 최대한 줄이고 기존 작품을 활용해 시민들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APAP 사업 구조를 조정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글ㆍ사진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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