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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문재인 찬조연설’의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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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문재인 찬조연설’의 죄

입력
2016.10.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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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덮는 웨이브 머리, 각진 얼굴에 조금은 고집스러워 보이는 표정. 한눈에도 예술가적 풍모가 넘치는 연극 연출가 이윤택은 이른바 명문 고교를 다녔지만 문제아였다고 한다. 동창인 건축가 승효상은 “항상 지각하고 말썽을 피워 하루가 멀다 하고 선생님께 혼이 나 나중에 뭐가 될까 걱정했을 정도”라고 쓴 적이 있다. 그런 걱정을 우습게 만들겠다는 듯 이윤택은 시도 쓰고 신문사에서도 일하다가 결국에는 대한민국의 대표 연출가가 됐다. 영혼이 얼마나 자유로운지 기형도 시인은 그를 ‘문화 무정부주의자’라고 불렀다.

▦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12년 12월 이윤택은 또 다른 동창 문재인으로부터 찬조연설을 부탁받는다. 고교 시절 1, 2등을 다툰 문재인과 달리 성적이 형편없었고 그래서 노는 물 또한 달랐던 그는 옛 친구의 요청을 외면하지 않았다. 이윤택은 찬조연설에서 학창 시절 일화를 소개하며 문재인의 됨됨이를 알렸다. 당시 그가 한 연설은 지금도 온라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실 그는 정치에 무관심했으며 그때까지도 정치적 발언과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그날의 찬조연설 또한 정치적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 냉정하게 말하면 문재인에게 결정적 도움을 주었다 할 수 없는, 수많은 찬조연설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 연설은 3년 뒤 또 다른 차원에서 주목받는다. 201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창작기금 희곡 심사에서 그의 작품이 100점을 맞고도 떨어지자 그 연설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증거가 없다 해서 의심까지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순수예술인 연극은 외부 도움이 없으면 어려움이 크다. 심사 탈락에 이어 그가 이끌고 있는 극장마저 2년 전부터 지원이 끊겨 처분을 앞두고 있다. 보복이 의심되는 정황이다.

▦ 소문이 무성하던 ‘문화계 블랙리스트’라는 자료가 공개됐다. 원래 블랙리스트는 1970, 80년대 노조 탄압용으로 만들어 공유하던 명단이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는 방송, 연극, 영화, 미술 등 문화계 블랙리스트 논란이 뜨거웠다. 이번 자료에는 무려 9,473명이 올라 있어 명단에 끼지 못하면 도리어 머쓱해질 정도다. 그러나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활용했을 것으로 의심받는 청와대나 문체부는 부인하고 있다.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부끄럽고 창피해서 발뺌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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