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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랑 산다] ‘공원’에 버려진 반려 토끼들

입력
2018.07.22 13:00
수정
2018.07.22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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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반포동 몽마르뜨 공원에 토끼가 누워있다. 이순지 기자
서울 반포동 몽마르뜨 공원에 토끼가 누워있다. 이순지 기자

‘몽마르뜨 공원, 공원에서 살고 있는 토끼를 찾아보세요.’

한국관광공사 관광지 안내 홈페이지에서 서울 반포동 ‘몽마르뜨 공원’을 소개하는 문구다. 2000년에 만들어진 이 공원은 인근 서래 마을에 프랑스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 프랑스 유명 관광지 ‘몽마르뜨 언덕’에서 이름을 따와 ‘몽마르뜨 공원’이 됐다.

이 공원에서는 다른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귀엽고 앙증맞은 동물을 만날 수 있다. 바로 ‘토끼’다. 초등학교 운동장 크기만한 작은 공원 곳곳에 토끼 수십 마리가 자리 잡고 살고 있다. 인근 주민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토끼 체험장으로 이 공원을 부르기도 한다. 주말이면 토끼가 좋아하는 과일이나 채소를 싸들고 아이와 함께 산책 나온 가족들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몽마르뜨 공원의 토끼들이 수난을 겪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토끼 공원으로 알려지면서 토끼를 유기하는 사례도 늘고, 애완견이 토끼를 물어 죽이는 일도 있었다. 인근 주민 박복례(70)씨는 “토끼들이 어두운 밤이면 야생 고양이나 산책 줄을 하지 않은 강아지한테 물리는 일이 잦다”며 걱정했다. 이달 초에는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한 갤러리에 “몽마르뜨 공원의 토끼를 죽이고 싶다”는 글이 올라와 토끼 반려인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햇빛이 뜨겁게 내리쬐던 지난 19일 ‘몽마르뜨 공원’을 찾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토끼 공원’에서 토끼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살펴봤다.

반려동물로 인기 있는 ‘마스카라 토끼’들이 가득

눈 주변이 아이라인을 한 것처럼 검은색을 띄고 있어 이른바 ‘마스카라 토끼’라고 불리는 토끼 한 마리가 몽마르뜨 공원에서 쉬고 있다. 이순지 기자
눈 주변이 아이라인을 한 것처럼 검은색을 띄고 있어 이른바 ‘마스카라 토끼’라고 불리는 토끼 한 마리가 몽마르뜨 공원에서 쉬고 있다. 이순지 기자

몽마르뜨 공원에 가려면 국립중앙도서관 근처 작은 언덕을 올라야 한다. 나무 계단 100개 정도를 밟고 올라가면 6,000평 정도의 넓은 공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토끼 공원’으로 알려졌지만 폭염 때문에 한 낮에는 토끼가 눈에 잘 띄지는 않는다. 토끼는 두꺼운 털 옷을 입고 있는 셈이라 더위에 약한 편이다. 그래서 보통 시원한 곳을 찾아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

주변 나무 그늘을 10분 정도 천천히 살피니 토끼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얀색 털을 가진 토끼들이 몸을 잔뜩 웅크리고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더위 때문인지 귀 끝을 파르르 떠는 토끼도 있었다.

이 공원의 토끼들은 비슷한 점을 갖고 있었다. 눈 주변이 검고 귀가 쫑긋 서 있었는데, 미국토끼사육협회(ARBA)는 이 토끼들을 ‘드워프 오토(Dwarf Hotot)’라고 부른다. 국내에서는 눈 주변이 검다고 해서 화장품 ‘마스카라’에서 이름을 따와 ‘마스카라 토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드워프 오토’는 소형 토끼를 원하던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1970년대 독일에서 몸집이 작고 검은색 털이 인상적인 더치(Dutch) 품종과 온 몸이 하얀색인 폴리시(Polish) 품종을 교배해 만들었다. ‘드워프 오토’는 인간의 소유 욕구에 의해 만들어진 ‘애완 동물’이다.

미국토끼사육협회에 따르면 몸이 작고 사람에게 친밀한 성격을 가진 드워프 오토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 높은 토끼 품종이다. 국내에서도 토끼를 파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다.

토끼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와 산책 나온 주민들에 따르면 몽마르뜨 공원에 토끼가 살기 시작한 것은 2013년쯤이다. 공원에서 만난 김진규(50)씨는 “처음부터 공원에 토끼가 많았던 것은 아니다. 2012~13년 토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이때 처음 등장한 토끼가 드워프 오토 품종의 토끼였다고 기억했다.

때문에 몽마르뜨 공원의 드워프 오토 품종 토끼는 수년 전 처음 버려진 뒤 번성한 것이라는 추측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나오고 있다. 마트 등에서 분양 받지 않고서는 반려동물에 맞게 개량된 토끼가 하늘에서 뚝 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귀 뜯기고 코 없는 상처입은 토끼들

토끼의 오른쪽 귀에 상처가 있다. 이순지 기자
토끼의 오른쪽 귀에 상처가 있다. 이순지 기자

몽마르뜨 공원에는 아픈 토끼들이 많았다. 귀 한 쪽이 무언가에 물려 뜯긴 토끼도 있었다. 공원 한 쪽에는 자원봉사를 하는 한 할아버지가 아픈 토끼를 위해 마련한 은신처가 있었는데, 토끼 한 마리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지난 10일에는 살점이 너덜거릴 만큼 코에 심각한 상처를 입은 토끼 한 마리가 토끼 관련 커뮤니티 회원들의 도움으로 구조된 적도 있다.

반려동물로 살던 토끼들이 야생에 버려지면 살아남기 힘들다고 한다. 토끼 전문 수의사들은 “집에서 살던 토끼를 야생에 버리는 것은 죽으라는 얘기와 같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공원의 환경도 토끼에게 위협적이다. 밤에는 야생동물이 나타나 토끼를 위협하고, 일부 몰지각한 견주 때문에 고통을 겪는 토끼들도 있다.

몽마르뜨 공원은 토끼만을 위한 공원이 아니기 때문에 산책 나온 개들도 적잖다. 문제는 목줄을 하지 않은 개다. 이런 개들 중 일부가 토끼를 공격하는 경우가 있다. 자연에서 먹이사슬이 하층 단계인 토끼는 상위 포식자에게 언제나 상처 입는 존재다.

코가 뜯긴 채 발견됐던 토끼. 김송이EMMA 제공
코가 뜯긴 채 발견됐던 토끼. 김송이EMMA 제공
이 토끼는 토끼 반려인들 도움으로 구조 후 치료를 받고 입양됐다. 김송이EMMA 제공
이 토끼는 토끼 반려인들 도움으로 구조 후 치료를 받고 입양됐다. 김송이EMMA 제공
공원에서 마른 풀을 먹고 있는 토끼. 풀에는 살충제가 묻어 있는 경우도 있어 토끼에게 위험할 수 있다. 이순지 기자
공원에서 마른 풀을 먹고 있는 토끼. 풀에는 살충제가 묻어 있는 경우도 있어 토끼에게 위험할 수 있다. 이순지 기자

토끼들의 먹이인 공원의 풀들도 위험할 수 있다. 독성이 있는 풀도 있고, 제초제나 살충제가 뿌려진 풀도 있기 때문이다. 몽마르뜨 공원에는 다행히 토끼 주식인 건초를 수시로 토끼들에게 나눠주는 반려인들이 있다. 상위 포식자, 야생의 풀 뿐만 아니라 더위와 추위도 토끼들에게 문제가 된다. 특히 요즘처럼 바깥 기온이 35도를 훌쩍 넘길 때는 토끼가 열사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 신체구조상 열을 배출하기 어려운 토끼는 무더운 곳에 오래 있으면 열사병에 걸려 생명을 잃는 일도 종종 있다.

토끼 공원? 토끼 ‘유기’ 공원

더위에 지쳐 잠든 토끼. 이순지 기자
더위에 지쳐 잠든 토끼. 이순지 기자

몽마르뜨 공원이 ‘토끼 공원’으로 알려지면서 최근에는 기존 마스카라 토끼 외에 검은색, 회색 빛깔을 가진 다양한 토끼들도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토끼를 돌보러 공원에 종종 온다는 이은지(23)씨는 “인터넷에서 이 곳이 토끼 공원이라고 소문이 나면서 토끼를 버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들도 이렇게 토끼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을 우려했다. ‘토끼 공원’이 아니라 ‘토끼 유기 공원’으로 불러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토끼들이 계속 늘어나자 불편함을 호소하는 주민들도 있다. 매일 이 곳으로 운동을 나온다는 김모(67)씨는 “토끼들이 너무 많이 늘어나 오줌 냄새가 나서 불쾌하다”며 “토끼 좀 그만 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네이버 토끼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몽마르뜨 공원의 토끼들을 보호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커뮤니티에 ‘몽마르뜨 공원의 토끼들을 살려야 한다’는 글을 올리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토끼를 유기하는 사람들에게 경고성 글을 남기고 있다.

2015년 권윤주 작가가 펴낸 ‘옹동스’라는 반려동물 관련 책에는 ‘사람이 죽으면 먼저 가있던 반려동물이 마중 나온다는 얘기가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토끼를 키우는 반려인들은 몽마르뜨 공원에 토끼를 버리는 사람에게 묻는다. “나중에 토끼가 마중 나와서 ‘나를 왜 버렸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건가요?”

이순지 기자 seria112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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