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단독] “국정교과서 반대 교사 징계하라” 학교 들쑤시는 일베
알림

[단독] “국정교과서 반대 교사 징계하라” 학교 들쑤시는 일베

입력
2017.01.04 21:26
0 0

학생에 반대 배지 나눠줬다고

해당 고교에 수십통씩 항의 전화

“정치적 중립 위반 따지자”

일베ㆍ박사모 사이트에 선동글 올라와

학교 이념 전장으로 변질 우려

서울 강서구 A고 교사가 학생들에게 나눠준 ‘역사 국정교과서 반대’ 배지.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가 제작한 것이다. 트위터 캡처
서울 강서구 A고 교사가 학생들에게 나눠준 ‘역사 국정교과서 반대’ 배지.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가 제작한 것이다. 트위터 캡처

역사 국정교과서 반대 배지를 교사가 학생들에게 나눠준 고등학교가 우익 성향 시민들의 집단 항의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극우 사이트 일간베스트(일베)와 보수 단체 박근혜를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박사모) 등이 배후로 보이는데, 국정교과서 시범 도입 정책이 학교 현장을 이념 전장으로 변질시킬 것이란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는 셈이다.

4일 서울 강서구 A고에 따르면, 이 학교 1학년 담임 교사 B씨를 징계하라거나 교장이 공식 사과하라는 내용의 집단 민원 전화가 2일부터 학교에 하루 20~30통씩 걸려오고 있다. 역사 국정교과서를 친일 독재 미화 교과서라 헐뜯고 반대하는 주장이 담긴 배지를 해당 교사가 학생들에게 나눠줬다는 게 이유다.

학교가 진상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말 전국교직원노조 소속인 이 교사가 전교조에서 받아온 해당 배지를 희망하는 학생에 한해 줬을 뿐 부착하라고 지시를 한 적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교장 C씨는 “징계할 일은 아니라 판단해 구두 경고를 했고, 전화를 한 민원인에겐 정치적 중립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런 식의 조직적, 집단적 민원은 처음인데다, 혹여 조합원 보호를 명분으로 전교조까지 움직일까 봐 걱정”이라며 곤혹스러워했다.

이번 사건은 2, 3일 일베와 박사모 인터넷카페 등의 게시판에 등장한 선동 게시물들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익명의 글쓴이들은 해당 교사가 국정교과서 반대 배지를 달라고 학생들에게 지시했다고 전하는 한편 좌(左)편향 교육으로 교육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으니 소속 학교에 전화해 따지고 사과 및 징계를 요구하자고 부추겼다. A고 교무실 전화번호가 포함된 해당 글은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삽시간에 퍼졌다.

일베 회원 등은 이번 건을 상대방 언행을 그대로 따라 하는 ‘미러링’으로 포장하면서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2013년 말 진보 성향 시민과 단체들의 조직적 항의 탓에 우파 사관이 반영된 교학사 역사 검정교과서를 채택하는 학교가 1곳에 그친 것에 대한 앙갚음 차원이라는 것이다. 일베 게시물엔 ‘좌파가 했던 것 그대로 우리도 배웠으니 실천하자’, ‘우리가 당한 거 돌려주자’ 등의 댓글이 달렸다.

정부가 연구학교 지정으로 국정교과서를 당장 올해부터 현장에 시범 적용하려는 절차에 속도를 내면서, 학교 현장의 이념 갈등이 더 커질 것이란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송재혁 전교조 대변인은 “사학재단 전횡이나 학교장 독단에 의해 연구학교 지정이 신청되는 학교가 없는지 예의주시할 방침”이라며 “구성원 합의가 없는 일방적 결정이라면 당연히 개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태우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경기 양주고 교사)은 “일베ㆍ박사모 등이 이념 논쟁을 조장하려고 일부러 들쑤시는 것 같다”며 “어떻게든 국정교과서를 살리려는 교육부가 무책임한 무리수를 던지는 바람에 갈등의 단초가 제공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