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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빼앗는 건, 일자리가 아닌 임금이었다

입력
2017.10.16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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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 세계은행 총재가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2017 세계은행ㆍ국제통화기금 연례회의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김용 세계은행 총재가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2017 세계은행ㆍ국제통화기금 연례회의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세계가 붕괴 과정에 놓여있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가 지난 5일 세계은행의 연례회의를 앞두고 열린 미국 뉴욕 콜롬비아대 강의에서 한 말이다. 로봇과 인공지능 등 산업 자동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수백만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우려다.

산업현장 곳곳에 로봇이 등장하면서 김 총재 외에도 같은 우려를 하는 사람이 많다. 이러다 로봇이 노동자를 모두 대체하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로봇의 문제는 일자리 대체보다 임금을 깎아 내려 노동자들 사이에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점이다.

실업은 없었지만 임금 불평등이 커졌다

지난 9월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과 뒤셀도르프 대학 경제학과 합동 연구팀은 1994~2014년까지 독일 산업현장에 설치된 로봇의 수가 4배 증가했지만 일자리 수는 크게 감소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독일의 경우 1994년 노동자 1,000명당 2대의 산업로봇이 있었다. 20년 후인 2014년 로봇의 수는 7.6대로 크게 증가했다. 같은 기간 미국과 유럽의 로봇 수가 노동자 1,000명당 1대에서 3대 정도로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다.

연구진들은 로봇 한대가 약 2개의 일자리를 대체했으며 로봇이 없었다면 같은 기간 27만 5,0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됐을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연구진은 “독일의 청년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젊은 노동자 중 25%만 제조업에 종사하는 것을 고려할 때 로봇이 일자리 감소에 미친 영향은 0%”라고 주장했다.

아랍에미레이트가 도입한 세계최초의 인공지능 로봇 경찰이 지난 6월 두바이 시내에서 순찰을 하고 있다. 이 로봇은 범죄발생 신고를 받는 것은 물론 사람의 감정과 표정을 인식해 범죄자를 찾는데 기여할 수 있으며, 아랍어ㆍ영어 등 6개 국어를 사용한다. 두바이=AFP 연합뉴스
아랍에미레이트가 도입한 세계최초의 인공지능 로봇 경찰이 지난 6월 두바이 시내에서 순찰을 하고 있다. 이 로봇은 범죄발생 신고를 받는 것은 물론 사람의 감정과 표정을 인식해 범죄자를 찾는데 기여할 수 있으며, 아랍어ㆍ영어 등 6개 국어를 사용한다. 두바이=AFP 연합뉴스

정작 로봇의 증가가 영향을 미친 분야는 임금이다. 연구진 조사에 따르면 독일에서 로봇이 늘어나면서 노동자들 사이에 임금 불평등을 심화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1994~2014년 수작업에 종사한 중간ㆍ하급 기술 노동자들은 75%가 임금삭감을 경험했다. 반면 교육수준이 높은 노동자들은 오히려 임금이 증가했다. 옌스 슈데쿰 뒤셀도르프 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로봇이 야기하는 진짜 문제는 불평등”이라며 “로봇의 발전은 중간기술자들에게 고통을 주지만 과학자 등 대학 교육을 받은 고등기술 노동자들에게는 이전보다 더 높은 임금을 보장해 사회격차가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로봇의 증가는 나이든 노동자보다 젊은 노동자들에게 더 불리한 것으로 나나타났다. 연구진은 로봇이 증가해도 이미 직장을 갖고 그곳에서 오랫동안 일한 노동자들일수록 ‘로봇 실업’의 영향을 덜 받는다고 분석한다. 이는 독일 특유의 강한 노조가 임금협상을 통해 노동자들의 고용안전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개도국ㆍ빈곤층이 떠안는 위협

독일의 연구결과는 결국 미숙련 노동자가 많을수록, 노조 등 이들을 보호하는 조직이 부실할수록 로봇 투입에 따른 부정적 영향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지난해 1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미국 시티그룹과 영국옥스퍼드대 연구진이 공동 발표한 연구가 이를 증명한다. 연구진은 “로봇으로 대표되는 일자리 자동화가 선진국보다 개발도상국에 더 큰 위협”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들은 개도국의 중심 산업인 농업과 제조업 분야의 인력이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선진국의 산업인력보다 대체하기 쉽다고 봤다. 따라서 에티오피아, 태국, 중국 등에서는 일의 70~85% 가량이 향후 20년 내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개발도상국이 아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도 평균 57%의 일자리가 로봇의 영향을 받는다.

로봇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교육 투자를 늘리는 것이다. 옥스퍼드대의 칼 베네딕트 프레이 교수는 “노동자들에게 교육훈련을 제공하거나 저소득 급여자에 대한 근로장례세제를 도입해 자동화의 부정적 영향에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봇ㆍ인공지능의 위험을 경고한 김 총재 역시 세계은행이 각국의 교육 등 인적자원 투자를 측정할 지표를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미래의 경제가 어떤 모습이든 그것을 배우고 적응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유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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