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시도교육감이 자율형사립고(자사고)를 지정취소 할 경우 교육부장관과 협의하도록 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자사고와 특목고를 지정하거나 지정취소 하는 경우 사전에 교육부장관의 동의를 받도록 법안을 바꾼다는 것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느닷없고 황당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교육부의 이런 방침은 서울시교육청이 어제 서울의 자사고 14개교 가운데 8개교가 재지정기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자료를 공개한 직후 나왔다. 지난달부터 실시한 교육청의 자사고 평가에서는 8개교가 기준점수인 70점을 넘지 못했다. 현행 법령에는 100점 만점의 평가에서 70점을 넘지 못하는 자사고는 강제로 일반고로 전환하도록 돼있다.
교육부의 계획은 교육자치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른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바가 크다. 1991년 제정된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에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교육의 자주성 및 전문성과 지방교육의 특수성을 살린다’고 명시돼 있다. 역대 정부는 이를 근거로 초중고교와 대학의 자율화를 지속적으로 확대해왔다. 이런 기조는 이명박 정부 때도 이어져 초중고교에 대한 교육부장관의 포괄적 장학지도권까지 폐지됐다. 교육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정부의 간섭과 통제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명제는 어느 정부가 들어서든 확고하게 유지돼온 원칙이다.
이런 배경에서 볼 때 자사고와 관련한 교육부의 태도는 다분히 감정적으로 보인다. 마음에 들지 않으니 판을 깨자는 얘기밖에 안 된다. 6ㆍ4 지방선거에서 진보교육감이 대거 당선되자 교육감직선제를 폐지하자고 한 것과 다를 바 없다. 현행 법령에 규정된 대로 자사고 문제는 교육감과 교육부장관의 협의를 통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설혹 갈등이 있더라도 대화를 통해 풀어야지 교육자치라는 근본 원칙을 훼손하면서 법을 고치려 드는 발상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교육부가 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 재평가 결과에 대해 동의 여부를 검토하지 않고 반려한다는 것도 속 좁은 처사다. 교육청의 평가결과에 문제가 있다면 조목조목 사유를 들어 반박하고 협의하여 해법을 찾아야 한다. 아예 검토 자체를 않겠다는 것은 직무유기를 넘어 유치한 감정대응이 아닐 수 없다. 황우여 교육부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자사고가 본래 설립 목적과 건학 이념에 충실하게 운영되고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울교육청의 평가결과부터 꼼꼼히 살펴보는 게 우선이다. 처음부터 법을 바꾸겠다니, 서류를 반려하겠다느니 하는 것은 스스로 정당성에 손상을 끼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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