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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국보법' 별명 공안통… 코드 맞는 박 대통령의 '믿을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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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국보법' 별명 공안통… 코드 맞는 박 대통령의 '믿을맨'

입력
2015.05.21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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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機 폭파' '임수경 밀입북' 등 검사 시절 굵직한 공안사건 맡아

검사장 인사서 연거푸 탈락하다 MB정부 들어서며 승진 막차 타

朴정부선 초대 법무 장관 발탁 후 작년 통진당 해산 명령 이끌어내

DJㆍ노무현 때 檢인사 '환란' 비하… 기업인 선처 발언 등 구설수도

신임 국무총리에 지명된 황교안(왼쪽) 법무부 장관과 이완구 전 총리가 지난달 27일 열린 이 전 총리 이임식 행사장에서 스쳐 지나고 있다. 뉴시스
신임 국무총리에 지명된 황교안(왼쪽) 법무부 장관과 이완구 전 총리가 지난달 27일 열린 이 전 총리 이임식 행사장에서 스쳐 지나고 있다. 뉴시스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에 지명된 황교안(58) 법무부 장관은 별명이 ‘미스터 국가보안법’일 만큼 ‘공안통’이다. 대검 공안 1ㆍ3과장과 서울지검 공안2부장, 서울중앙지검 2차장 등 공안검사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가 쓴 ‘국가보안법 해설’(1998년)은 공안수사의 교과서로 불린다. 황 후보자가 30년 검사 생활 동안 맡았던 사건들도 굵직한 공안 사건들이 많다. 1987년 ‘칼(KAL)기 폭파범’ 김현희를 조사했고, 89년 ‘임수경 밀입북 사건’도 수사했다.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던 2005년 5월 “6ㆍ25 전쟁은 북한 지도부에 의한 통일 전쟁”이란 글을 쓴 동국대 강정구 교수의 국보법 위반 사건에서 ‘구속 수사’를 주장해 천정배 당시 법무장관과 갈등을 빚었다. 천 장관의 불구속수사 지휘권 발동, 김종빈 검찰총장의 사퇴로 이어진 당시 파문의 한복판에 그가 있던 셈이다. 황 후보자는 당시 “사상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권리지만 ‘유보조항’에 의해 국보법으로 제한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같은 해 10월에는 이른바 ‘삼성 X파일 사건’ 수사를 지휘해 불법 도청을 주도한 임동원ㆍ신건 전 국가정보원장을 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삼성 인사들과 ‘떡값 검사’들은 모두 무혐의 처리한 반면, X파일 내용을 공개한 언론인들은 기소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후 검사장 승진 인사에서 연거푸 탈락했다가 2008년 이명박정부가 들어서면서 승진의 막차를 탔고, 2011년 부산고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났다.

이러한 경력은 2013년 출범한 박근혜정부의 초대 법무부장관으로 발탁되는 데 밑거름이 됐다. 실제로 장관 시절 행보를 보면 ‘공안검사’의 시각이 그대로 묻어난다. 법무부에 위헌정당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구성, 지난해 말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명령을 이끌어낸 게 대표적이다. 2013년 ‘국정원 대선개입 댓글 사건’ 때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국정원법 위반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모두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고 수사팀이 방침을 정하자 “선거법 위반은 빼라”며 영장 청구를 막기도 했다.

황 후보자는 현 정부의 국정철학 기조를 법무행정에 그대로 반영, 박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아 왔다는 평가다. 하지만 재임 시절 몇몇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해 9월 황 후보자는 “경제살리기에 도움이 된다면 기업인들의 가석방을 차단할 필요는 없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 구속수감 중인 재벌 총수들에 대한 선처 가능성을 시사했다. ‘법무장관으로서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비판이 일자 그는 “원칙론적인 얘기를 한 것”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최근 ‘성완종 리스트’ 사건과 관련해서도 야권을 향한 수사 확대를 지시하는 것으로 해석될 만한 언급을 해 논란을 야기했다.

앞서 황 후보자가 취임 이전인 2011년 한 교회 강연에서 “김대중ㆍ노무현 이런 분이 대통령이 되니까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들이 전부 좌천됐다”면서 당시의 검찰 인사를 ‘환란’(患亂)에 빗대 비하한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해선 ‘투신사건’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대중씨”라고 각각 지칭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쓴 ‘집회 시위법 해설’(2009년)에서 4ㆍ19 혁명을 ‘혼란’으로, 5ㆍ16 쿠데타를 ‘혁명’으로 표현한 바 있다.

다만 ‘공안검사’ 황 후보자에 대한 상대편의 평가가 박하지만은 않다고 한다. 경기고 출신인 그는 초임 검사 시절, 노회찬 전 의원이나 고(故) 이범 백산서당 대표 등 고교동창들이 공안 사건에 휘말렸을 때 많은 도움을 줬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한 지인은 “운동권 인사들로부터 ‘가는 길이 달라도 괜찮은 친구’라는 평을 들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직접 연주한 색소폰 CD를 발표한 적이 있고, 경기고 동창회 4중창 멤버로 가끔씩 콘서트를 열기도 하는 등 음악에도 조예가 깊다. 부인 최지영씨와 1남 1녀.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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