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의견 반영 강조 했어도
신뢰성 위해 복수 평가 장치 필요
노동자 동의 없는 취업규칙 변경 시
'사회 통념상 합리성' 판단도 쟁점
한국노총 반발… 노사정 탈퇴 수순
정부가 30일 공개한 ‘직무능력과 성과 중심의 인력운영과 취업규칙 관련 전문가 논의자료’(정부 초안)는 저성과자에 대한 일반해고 절차를 조목조목 명시한 것이 특징이다. 임금피크제 도입을 촉진하기 위해 취업규칙을 변경할 때 노동조합의 동의를 묻지 않아도 되는 조건으로 정부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들었다.
정부 초안 ‘객관적 공정한 평가’위해 근로자 의견 반영해야
30일 공개된 정부 초안은 “공정한 평가를 한 후 교육훈련 등을 통해 성과를 높일 기회를 줘도 성과를 못내면 저성과자의 해고가 가능하다”는 것이 골자다. 정부가‘성과가 낮다’는 것을 해고사유로 제시하는것은 처음이라 이런 일반해고 대상자의 선정사유, 평가기준, 평가방법, 교육훈련의 방법, 해고대상자의 권리구제 절차 등을 비교적 구체화 했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위해 초안은 평가제도 마련에 노사협의회나 노동조합, 근로자 대표 등 근로자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절차를 둘 것을 강조했다. 평가방법으로는 수치화할 수 있는 계량평가와 주관적 평가를 복합적으로 도입하고, 상대평가보다는 절대평가 방식이 합리적이라고 봤다. 평가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평가위원회 등 복수의 평가자를 두거나 여러 평가단계를 둬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최근 평가에서 우수한 점수를 받은 사람이나 근속연수가 낮은 신입사원, 다른 조직 발령 후 1년 이내인 근로자 등에 대해서는 평가를 배제하도록 했다. 저성과자에 대한 교육훈련이 퇴출을 위한 요식행위로 전락했던 기존 사례 등을 감안, 교육훈련도 ‘업무능력 향상’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이런 절차에도 불구하고 업무수행 능력이 향상되지 않아 회사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라면 해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지침은 임금피크제 도입을 촉진하기 위한 지침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나 취업규칙을 변경할 때 그 내용이 근로자에 불리하다면 과반수 노조 대표나 근로자 과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정부 초안은 그러나 그 내용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경우 근로자의 동의가 없더라도 취업규칙 변경이 가능하고 효력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사회통념상 합리성에 대한 판단 근거로 ▦ 근로자의 불이익 정도 ▦동종 사항에 관한 국내 상황 ▦사용자 측의 변경 필요성 ▦노조와의 충분한 협의노력 ▦다른 근로조건의 개선여부 ▦변경된 취업규칙의 정당성 등 6가지를 제시했다.
‘공정한 평가’와 ‘사회통념상 합리성’ 격론 예상
정부 초안에 대해 이기권 고용부 장관은 이날 “자의적ㆍ정치적으로 해석하고 폄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지만 ‘객관적 공정한 평가’방법에 대해서는 논란이 불가피하다. 객관적인 수치로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직종이 금융업 종사 영업직 등 일부로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정성적인 평가를 한다면 사용자의 주관이 개입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류주형 민주노총 정책부장은 “현장에서 사용되는 인사평가 기준은 ‘업무에 적극적으로 임하는가, 부서원과 소통이 원만한가’ 등 지극히 주관적인 지표가 많다”며 “사용자가 마음만 먹으면 요식행위로 업무배치나 교육 등 재활기회를 주고 해고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김상호 경상대 법학과 교수는 “고용부가 만든 가이드라인이라면 기본적으로 사용자보다는 저성과자로 퇴출 우려가 있는 근로자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며 “해고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지 등 근로자 보호 관점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취업규칙 변경 시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제시한 것도 논란이다. 정부 초안은 대법원 판례가 제시한 6가지를 그 근거로 제시했는데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더라도 그 판단을 누가 어떻게 내릴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이 정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합리성을 근거로 근로자 동의 예외를 두는 것은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는 법리적 모순”이라며 “근로감독관이 종합적인 고려를 한다지만 합리성을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토론회에서는 기존의 판례가 부족하기 때문에 지침을 만들만한 충분한 근거가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갑래 단국대 법학과 교수는 “비슷한 사안에 대한 판례가 쌓여야 어떤 일을 두고 (옳다 그르다)이야기를 할 수 있다”며 “지금까지 통상해고나 취업규칙에 대해서는 판례가 부족하기 때문에 지침화하려면 더 많은 논의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노사정 대타협 무효선언할듯
이날 정부의 지침 공개로 한국노총은 사실상 ‘9ㆍ15 노사정 대타협 무효선언 및 노사정위 탈퇴’ 수순에 들어갔다. 한국노총은 연초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지난 23일 중앙집행위원회가 논의하기로 한 ‘노사정 대화 중단 및 노사정위 탈퇴 여부’를 의결하기로 했다. 강훈중 한국노총 대변인은 “정부가 전문가 좌담회 형식을 빌려 지침을 논의했다고 하지만 사실상 현장에는 시행이 된 것과 같은 효과를 갖는다”며 “이제는 지도부의 결심만 남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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