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효과·한계 깐깐한 검증 소홀... 횟수도 2회서 1회로 줄이는 등
정부, 과학성 뒷짐 업계 배려만… 사시사철 나타나는 상재화 시작
가축 전염병인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가 허술한 방역 탓에 감기처럼 늘 상존하는 질병으로 바뀌고 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주최로 24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구제역ㆍAI 상재화’ 토론회에 참석한 수의학 전문가들은 “구제역은 이미 국내 상재화가 시작됐고, AI는 상재화 직전”이라며 “방역당국이 2010년 이후 구제역과 AI 방역에 3조원 가까이 쏟아 부었지만 여전히 방역에 허점이 많아 이들 전염병이 창궐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재화란 기후, 환경 등 요인으로 특정 시기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사시사철 항시 출현하는 것을 말한다.
이 같은 전문가들의 지적은 상재화로 보기 어렵다는 정부 입장과 배치된다. 국제수역사무국(OIE) 등에선 ▦전국적으로 3~5년 동안 지속 발생하거나 ▦외부에서 바이러스가 새롭게 유입되지 않았는데도 계속 나타나는 경우 상재화로 본다.
국내에선 구제역과 AI 모두 2010~2011년에 이어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전국 각지에서 잇따라 발병이 보고됐다. 새로운 바이러스는 구제역과 AI 모두 지난해 말 각 한 차례씩 국내 유입이 확인됐지만, 그 전에도 이미 과거 바이러스들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관계 당국의 허술한 방역이 구제역과 AI의 상재화를 불러 왔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정부가 과학적 측면은 뒤로 한 채 축산업계를 배려하는 방역정책을 고수해 사태를 키웠다”고 입을 모았다.
우선 효과적이지 못한 백신 접종이 문제가 되고 있다. 대한인수공통전염병학회장을 맡고 있는 김재홍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무조건 백신 접종만 할 것이 아니라 효과 높은 백신을 신중이 골라서 제대로 접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방역당국은 인건비가 많이 들고 육질 가치가 떨어진다는 농민들 주장에 따라 돼지에게 2회 맞히던 구제역 백신을 2010년 1회 접종으로 줄였다. 김 교수는 “돼지에게 1회 접종시 항체가 생기는 비율은 63~88%이지만 2회 접종하면 98%까지 올라간다”고 말했다. 돈은 돈대로 들였지만 효과를 충분히 보지 못한다는 비판이다.
방역 초기 바이러스 확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가축운반차량이나 유통업자, 도축장 관리가 소홀했던 점과 병을 확진받은 농장의 가축들을 살처분한 방식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점도 도마에 올랐다.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해당 농장의 가축들 전체가 아닌 증상을 보이는 가축만 골라 살처분한 바람에 살아남은 보균 가축들이 바이러스 전파의 매개체가 됐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옮을 수 있는 AI 방역은 더 중요하다. 외국에서 이미 인체 감염 사례가 나온 데다 바이러스의 주요 전파 요인인 오리에게 접종할 효과적인 백신마저 없는 실정이다.
이 같은 문제점 때문에 백신을 접종하고도 전염병이 발생하는 바람에 정부에 대한 불신만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방역대책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산업을 말살하면서까지 질병관리 정책을 펼 수는 없다”고 해명했다. 이영순 서울대 명예교수는 “구제역이나 AI가 상재화한 19개 동남아 국가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만큼 정부는 축산농가나 기업에 대해서도 보상보다 교육과 책임 위주의 정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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