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차례 영장 기각된 60대 남성
결국 부인 살해하고 목숨 끊어
3월엔 폭행 당해 두개골 골절도
법원 “부인이 관계 회복 원했다”
평소 ‘죽여줄게’ 문자 계속 보내
前 부인에 살인미수 혐의 실형도
법원이 두 차례 구속영장을 기각한 60대 남성이 상습적으로 폭행하던 부인을 살해하고 목숨을 끊었다. 살인을 부르는 가정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여론이 고조돼 특례법이 개정되는 등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가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가정폭력을 심각한 범죄로 보지 않아 피해를 막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지난 14일 서울 관악구 자택에서 송모(62)씨와 부인 A(58)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고 20일 밝혔다. 앞서 올 초 경찰은 A씨에게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두른 혐의로 송씨를 불구속 입건해 조사했다. 송씨의 폭행은 심각한 수준으로 조사됐다. A씨는 3월 “이가 좋지 않은데도 오징어를 먹는다”는 이유로 송씨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이로 인해 두개골 골절 등 중상을 입었으나 9시간 동안 방치됐다가 병원으로 옮겨졌다. 수일간 혼수상태에 빠진 A씨는 겨우 의식을 회복했다. A씨의 몸에서 폭행 흔적을 확인한 경찰은 3월 초 검찰을 통해 영장을 청구했지만 서울중앙지법은 “구속의 필요성이 없다”며 기각했다.
송씨의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5월에는 “상추를 봉지째 상에 놨다”는 이유로 도망가는A씨를 쫓아가며 폭행했다. 이웃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조사 끝에 5월 말 두 번째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이번에도 법원에서 기각됐다. 송씨가 “몸이 불편한 A씨를 내가 돌보겠다”고 말한 것이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의 안이한 판단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구속 영장이 기각되자 경찰은 추가 범행을 막기 위해 A씨에게 쉼터에 머물 것을 설득했다. A씨는 6월 말 집을 떠나 쉼터에 머물렀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가 변을 당했다. 송씨는 A씨가 쉼터에 머무는 사이에도 “죽여줄게”라는 문자메시지를 계속 보냈다.
A씨는 남편을 직접 신고하거나 처벌을 요구한 적이 없고, 송씨의 폭행을 보다 못한 이웃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숨진 부부는 연락이 되지 않아 집을 찾아온 송씨 동생에 의해 14일 발견됐다. 경찰은 지난 11일 송씨에 대한 세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해 18일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있었다.
경찰은 송씨가 약물을 투약해 A씨를 먼저 살해한 뒤 뒤따라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한 결과 두 사람 장기에서 약물이 발견됐다. 약물 성분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송씨가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압박을 느껴 아내를 살해한 후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장에서 발견된 송씨의 유서에는 “부인이 끝까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유산은 둘째 아들에게 물려주겠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송씨는 전 부인도 상습 폭행해 살인미수로 징역 4년의 실형을 받은 적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법원은 동종 범죄 전과 이력이나 가정폭력 재발 가능성을 감안하지 않았다. 법원 측은 송씨 부부가 “다시 잘 살아보겠다”는 입장을 밝혀 처벌보다 가정의 화합에 무게를 두고 영장을 기각했다고 설명했다. 법원 관계자는 “피해자가 피의자와 관계 회복을 원하는 점을 참작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의식을 잃게 만들 정도로 폭력의 정도가 심한 사건에 대해서조차 법원이 가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전통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가해자 격리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단순한 오판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간 가정폭력을 ‘남의 집 가정사’로만 취급해 피해자가 신고를 해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하면서, 형사처벌 전에도 법원이 가해자 격리를 결정하는 등 피해보호명령제도가 마련됐다. 하지만 법원조차 가정폭력을 범죄로 보고 엄단해야 한다는 인식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이번에 확인된 셈이다.
정현미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남편이 두 번이나 구속될 위기에 놓이면서 오히려 부인에 대한 폭력성과 보복심리만 커진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며 “심각한 가정폭력 사건의 경우 법원이 증거인멸 우려 등 단순 구속 사유를 따지기보다 사건의 본질과 피해자의 심중을 정확히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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