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SNS는 KBS 예능프로그램 ‘청춘FC 헝그리일레븐(이하 ‘청춘FC’)’의 연습경기 소식으로 뜨거웠다. 1,000명 수용규모의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보조구장에 4,0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몰려 관중석은 물론 경기장 근처에 서 있을 만한 곳은 가득 찬 모습이었다. 평일 오후 4시 경기에 몰린 뜻밖의 구름관중에 제작진도 적잖이 놀랐다는 후문이다.
청춘FC를 향한 열기는 수그러들 줄 몰랐다. 16일 오후 6시 경기도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K리그 클래식 성남 FC와 연습경기에는 입장이 시작된 오후 4시까지 300m 가량의 줄이 늘어섰을 정도였다. 입장 관중은 경기가 시작된 6시 이후에도 꾸준히 늘어나 전반전을 마친 오후 7시경엔 1층 관중석의 빈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들어찼다. 공식 집계는 아니나 이날 관중은 어림잡아도 제작진이 설정한 최대 입장인원인 8,000명을 넘어섰다. 웬만한 K리그 평일 관중을 훌쩍 웃돈 수치였다. 두 경기의 관중 수만 합해도 약 12,000명. 이들은 어떤 이유에서 평일 낮 시간에 열린 아마추어 팀의 연습경기를 찾았을까.
●“청춘들을 보며 나를 돌아봤다”
청춘FC의 키워드는 ‘두 번째 기회(second chance)’다. 당초 벨기에 2부 리그 AFC 투비즈 구단주인 심찬구 스포티즌 대표가 제안한 축구 인재 발굴 프로그램 포맷이 KBS 최재형 PD의 머리를 거치며 패자부활의 기회가 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 차례의 포기가 인생의 실패로 이어지지 않길 바라며 시작된 프로젝트다.
청춘FC의 감독은 안정환(39)과 이을용(40), 이운재(42).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로 온 국민에 뜨거운 감동을 줬던 그들은 10여 년이 흐른 지금 지도자로 변신해 한 차례 포기를 경험한 이들을 조련하며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안정환 감독은 “프로팀과 국가대표에서 온 ‘한 자리’ 제안도 있었지만 청춘FC에 왠지 모를 강렬한 끌림이 있었다”고 말했다.
안 감독처럼 수많은 축구팬과 시청자들도 청춘FC의 스토리에 묘한 끌림을 느끼고 는 중이다. 16일 성남FC와 연습경기에 자녀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은 최재호(43·경기 의정부) 씨는 “청춘FC를 보면서 내 스스로의 삶도 되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핸드볼 선수로 뛰었다는 최 씨는 “중학교 3학년 때 운동을 그만 둔 뒤 방황의 시간이 길었다”면서 “이들을 보며 나는 꿈을 너무 쉽게 포기한 게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녀들만큼은 성장하며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가졌으면 한다”고 했다.
이날 경기장엔 수업을 마친 후 경기장을 찾은 학생들도 많았다. 4명의 친구와 경기장을 찾은 정태윤(17·성남 송림고 2) 군은 “축구를 좋아해 재미로 시청한 예능이지만, 보면 볼수록 포기 않는 선수들에게서 깊은 울림을 느낀다”고 했다.
●청춘들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안 감독 등 코치진의 조련 아래 청춘FC의 기량은 나날이 발전 중이다. 호된 훈련을 통해 옛 기량을 되찾고 있는 선수들에 대한 국민적 관심까지 높아지면서 프로팀 입단 기회의 문도 서서히 열릴 모양새다.
이재명(51) 성남FC 구단주 겸 성남시장은 16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청춘FC 선수들 중 발전 가능성이나 잠재력이 있는 선수들을 영입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일종의 ‘패자부활전’을 펼치고 있는 이들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건 시민구단이 해야 할 공익적 책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며 “즉시 전력감을 구할 수는 없겠지만 노력하는 선수를 발굴해 키우는 게 구단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학범(55) 성남 감독 역시 “취지에 공감한다”며 청춘FC의 도전 과정을 끝까지 지켜볼 뜻을 전했다. 심찬구 투비즈 구단주 역시 “청춘FC 선수들의 입단을 장담할 수는 없지만 발전가능성 있는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겠단 뜻은 변함 없다”고 말했다.
청춘FC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도 분명 존재한다. 재기에 대한 희망고문이 이들의 인생에 더 큰 좌절을 안겨줄 수도 있다는 애정 어린 지적이다. 한 축구관계자는 “청춘FC의 모든 선수가 직업 축구선수로 재기할 수 없다는 건 시청자도, 축구관계자도, 제작진도, 선수 본인들도 다 아는 사실”이라며 “축구를 힘들게 접고 새 인생을 찾았던 선수들이 청춘FC를 통해서도 직업 축구선수의 꿈을 이루지 못한다면 또 한번의 좌절을 맛보게 되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 K리그 관계자는 “이들에겐 프로팀 입단이 1차 목표겠지만 입단 후부터가 진짜 전쟁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그는 “프로팀 내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통해 출전을 할 수 있어야 선수다운 선수라고 볼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또 한 번 좌절을 겪는다면 선수에겐 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미 성공”안정환의 재반박
청춘FC는 이날 역시 수도 없이 넘어졌지만 결코 주저앉진 않았다. 관중들은 넘어진 청춘들이 일어설 때마다 뜨겁게 환호했다. 이들의 도전 과정을 첫 회부터 지켜봤다는 유승환(34·경기 성남시) 씨는 16일 탄천종합운동장에 모인 관중들을 가리키며 “여기 모인 사람들은 그저 한 판의 축구 경기를 보러 온 게 아닐 것”이라며 “넘어져도 일어서는 청춘들의 모습을 끝까지 응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안 감독 역시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들은 이미 인생에서 가장 큰 성공을 맛보고 있다”고 힘 주어 말했다. 커다란 실패 후 얻은 재도전의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 지를 깨달은 것만으로도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거란 이유에서다. 안 감독은 끝으로 “나 또한 이들의 도전 과정을 보며 인생을 새롭게 배우고 있다”며 “결과도 중요하지만 이들의 도전 과정을 응원해 달라”고 당부했다.
글=김형준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사진=조영현 인턴기자(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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