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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공사 중 공론화는 세계에서 전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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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공사 중 공론화는 세계에서 전례 없어

입력
2017.06.28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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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률 이미 30% 가까이 진척

獨•日 공론조사는 결정 안된 정책

사전에 국민 의견 묻기 위해 실시

2년 전 사용후핵연료 공론 결과도

정부에서 수용 않고 정책 결정

‘명분 쌓기’ 의심부터 해결해야

28일 오전 부산시청 앞에서 탈핵부산시민연대와 신고리 5, 6호기 백지화 부산시민운동본부 회원들이 신고리 5, 6호기 건설 백지화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부산=전혜원 기자
28일 오전 부산시청 앞에서 탈핵부산시민연대와 신고리 5, 6호기 백지화 부산시민운동본부 회원들이 신고리 5, 6호기 건설 백지화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부산=전혜원 기자
28일 오후 울산시 울주군 온양읍 남창옹기종기시장에서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중단 반대 범군민대책위원회' 가 고리 5·6호기 건설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오후 울산시 울주군 온양읍 남창옹기종기시장에서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중단 반대 범군민대책위원회' 가 고리 5·6호기 건설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울산 울주군 서생면에 건설 중인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ㆍ6호기의 공사를 일시 중단하라고 발표하면서, 정부가 공사 재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여론 수렴절차로 꺼내 든 ‘공론화’ 카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결론을 내릴 때까지 시한이 촉박해 찬반 양쪽에서 모두 환영받지 못한 채 공론(公論)이 아닌 공론(空論)으로 흐를 위험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 최종 판단은 결국 정부가 내리게 된다는 점에서 공론화 절차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7일 신고리 5ㆍ6호기 건설 일시 중단을 지시한 국무조정실은 독일과 일본의 사례를 본받아 공론조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독일은 원전 방사성폐기물 처분 시설 용지 선정을 위해 ‘시민소통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국민 7만명을 대상으로 전화설문을 한 뒤, 이 중 120명을 추출해 시민배심원단을 구성하고, 이들에게 정보와 토론 기회 등을 제공한 뒤 최종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이다. 5년 전 일본의 ‘에너지 환경의 선택에 대한 공론조사’에선 3,000명의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300명의 배심원단을 뽑은 다음, 2030년 원전 의존도에 대한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학습과 토론을 거쳐 선택하게 했다. 그 결과 원전 ‘제로’ 시나리오 지지율이 46.7%로 나타났고, 일본 정부는 이를 정책에 반영했다.

두 사례 모두 원전 정책 공론화의 모범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들 공론화는 결정되지 않은 정책에 대해 사전에 국민의 의견을 묻기 위해 이뤄진 것이다. 적법한 절차를 거쳐 결정된 정책에 따라 건설을 시작해 공정률이 30% 가까이 진척된 원전 공사를 특별한 사고나 재난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중단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것과는 의제 자체나 시급성에서 큰 차이가 난다.

또 공론조사를 통해 올바른 판단을 도출하려면, 특정 이슈의 상반된 시각과 주장에 대한 균형 잡힌 정보를 충분히 받은 상태에서 대표성 있는 배심원단이 충분한 토론을 통해 공론을 형성해야 한다. 이렇게 다듬어진 공론을 정부가 국민의 ‘권고’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원자력 정책 결정에 공론화 절차를 거친 경험이 있다. 원전에서 쓰고 남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 방식에 대해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자 2013년 10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했다. 약 40억원을 들여 공론조사를 진행한 위원회는 사용후핵연료를 땅속에 묻는 영구처분시설 부지를 2020년까지 선정하고, 임시 저장 중인 사용후핵연료 포화 속도를 감안하면 늦어도 2051년엔 건설을 마쳐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 2015년 6월 정부에 권고했다.

이후 약 1년이 지나 정부가 내놓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은 권고안을 수용하지 않았다. 사안의 시급성 때문에 4년 안엔 부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위원회 권고와 달리 정부는 기간을 3배로 늘려 12년을 잡았다. 영구처분시설 가동 시작 시점도 권고보다 2년이나 늦은 2053년으로 정했다. 이렇게 바뀐 기본계획은 국회로 공이 넘어갔지만, 필요 법안 처리가 미뤄지면서 사용후핵연료 정책은 아직도 지지부진하다.

전문가들은 신고리 5ㆍ6호기 공론화 역시 이런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 대변인을 지낸 조성경 명지대 교수는 “조사 방식을 결정하는 기초 단계부터 총 20개월 운영했는데도, 상당히 빠듯했고 너무 짧다는 비판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정부가 제시한 방식대로 10명의 위원이 단 3개월간 진행하는 공론화는 추후 결론이 나온다 해도 인정받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론조사 분야의 권위자 로버트 러스킨 미국 텍사스대 교수는 2015년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 자문을 위해 방한했을 때 “단순히 찬반 의견을 다투는 게 아니라 다양한 입장을 접한 참석자들이 스스로 어떤 선택을 했는지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 공론조사의 핵심 가치”라고 설명한 바 있다. ‘공론이 곧 정책’은 아니라는 얘기다. 공론화가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되지 않으려면 신고리 5ㆍ6호기 건설을 지속하거나 중단하기 위한 ‘명분 쌓기’ 절차일 뿐이라는 의심을 해결해야 한다. 황주호(경희대 교수) 한국원자력학회장은 “기왕 공론화 절차를 밟는다면 세부 방식을 정교하게 디자인하고 차분히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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