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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천재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사회’가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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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천재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사회’가 만든다

입력
2018.05.25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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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ㆍ피렌체ㆍ에든버러…

천재들의 도시 훑으며

무질서ㆍ다양성ㆍ감식안 ‘3D’

무엇이 천재 만드는지 답 찾아내

특정 시대, 특정 지역에서 왜 한꺼번에 천재들이 쏟아질까. 에릭 와이너는 전 세계 취재여행을 통해 그 원인을 탐색한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스티브 잡스, 소크라테스, 모차르트, 프로이트, 타고르, 심괄의 초상. 문학동네 제공
특정 시대, 특정 지역에서 왜 한꺼번에 천재들이 쏟아질까. 에릭 와이너는 전 세계 취재여행을 통해 그 원인을 탐색한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스티브 잡스, 소크라테스, 모차르트, 프로이트, 타고르, 심괄의 초상. 문학동네 제공

회장님 가라사대 “1명의 천재가 10만명을 먹여 살린다” 했다. 우수한 인재를 육성하고 영입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 얘기다. 우리는 천재가 아니긴 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천재가 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알 정도는 된다. 대신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천재적인데, 바로 ‘그렇다면 500명의 천재를 길러내어 우리나라가 큰 걱정 없이 한번 살아보는 건 어떤가’라는 데 생각이 미치기 때문이다. 5,000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500명의 천재, 가만 생각해보면 아주 불가능한 얘기만도 아니다. 강호동도 ‘얼굴 천재’라 불리는 나라인데, 천재 500명 정도 못 길러 내겠는가.

‘500명 천재 육성 프로젝트’에 흥미 있다면 미국 언론인인 저자가 쓴 이 책 ‘천재의 발상지를 찾아서’를 참고해볼 법하다. 역사상 천재가 우르르 나타났다고 지목되는 시공간으로 뛰어들어가 그 시대를 탐사한 책이다. 저자의 의도도 우리와 비슷한 데가 있다. 자기가 천재가 되긴 이미 틀렸으니, 아홉 살 난 딸이라도 천재로 한번 만들어보고자 함이다. 너무 사적인 욕망 아니냐 욕할 건 없다. 천재 만들기는 어쨌거나 10만명을 위한 공익 사업이기도 하니까.

짐작 가능하듯 이 작업을 위해 저자는 기원전 450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작해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의 피렌체, 18세기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19세기 세기말 오스트리아의 빈을 거쳐 지금 현재의 미국 실리콘밸리까지 훑어본다. 정치적 올바름을 의식했는지, 지금 현 시점에서의 경제적 상승세를 의식했는지, 이 여정 안에는 11세기 중국 송나라의 항저우, 19세기 인도의 콜카타도 포함되어 있다.

아마 ‘지성사’에 관심 있던 이들이라면 언급된 시기와 지역만 봐도 대략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을 것이다. 플라톤, 소크라테스, 소피스트, 중국과학사가 조셉 니덤이 ‘르네상스 이전의 르네상스인’이라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송나라 시대 만물박사 심괄,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흄, 하이든ㆍ모차르트ㆍ베토벤, 프로이트 등이 줄줄이 등장한다. 저자는 ‘나 웃기지?’를 강요하지 않는, 툭툭 잽 던지듯 이런저런 유머를 재빨리 던지면서 빠른 걸음으로 시대와 천재의 얘기를 맛깔스럽게 풀어낸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킥킥대면서 만끽하는 재미가 적지 않다.

저자의 포인트는 결국 19세기 낭만주의가 낳은, 천재에 대한 환상을 깨는 데 있다. “완고한 신화가 있긴 하지만, 천재는 신이 아니고 그렇게 믿는 체하는 것은 우리에게나 그들에게나 몹쓸 짓이다.” 천재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 그럼 무엇이 천재를 만드는가. “인기 있는 한 도시학자는 창조적 도시에는 기술(Technology) 재능(Talent) 관용(Tolerance) 이 세가지 T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중략) 내 생각에 창조적 장소의 특징은 세가지 T보다 무질서(Disorder) 다양성(Diversity) 감식안(Discernment)이라는 세가지 D인 듯 하다.” 3T가 아니라 3D다.

천재의 발상지를 찾아서

에릭 와이너 지음ㆍ노승영 옮김

문학동네 발행ㆍ512쪽ㆍ1만8,500원

천재성이란 상상 이상의 방법으로 현 상태를 돌파했다는 의미다. 이 천재성이 발휘되려면 현 상황이 무질서해야 하고, 그 무질서를 돌파하기 위한 수단이 다양하게 동원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 여러 방법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줄 뿐 아니라 확장시킬 수 있는 일군의 그룹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아테네, 항저우, 피렌체, 에든버러에서 실리콘 밸리까지, 창조적인 곳은 이 조건을 다 만족시켰다.

천재성은 고독한 어느 개인의 내면에 숨어 있거나, 저기 멀리서 여기를 굽어보는 신이 갑자기 우리에게 내려 꽂아주는 영감 때문에 발생하는 게 아니다. 인종, 언어 등 복잡한 관계의 교차로 속에서 피어난다. 이를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에 빗대 저자는 ‘한 천재를 길러내는 데 온 도시가 필요하다’라 표현했다. 천재성을 위해 우리는 무질서, 다양함, 감식안을 인내해낼 수 있는가. 바꿔 말해 우린 진정 천재를 원하는가.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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