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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공의 배움… 계층상승 욕망 너머 인간다움을 꿈 꾸다

입력
2016.01.0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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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공부는 취업과 재취업을 위한 수험생 생활에 갇힌 신세가 되었습니다. 공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한국일보와 인문학협동조합이 공동기획한 새 연재물 ‘진격의 독학자’는 세상의 평가, 제도의 제약에 구애받지 않고 신념이자 태도로 공부를 놓지 않았던 이들의 삶을 조명합니다. 진정한 공부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기획입니다.

평범하고도 비범한 독학자들

오늘날 한국사회는 불평등과 새로운 정치적 억압으로 앓고 있다. 이 병은 별로 낯선 것은 아니다. 정부 수립 시점부터 5공화국에 이르는 긴 독재정권의 기억은 여전히 뇌리 속에 박혀있다. 우리는 ‘박정희의 딸’ 덕분에 ‘다시 꾸는 악몽’ 같은 것이 상연되는 극장에 있는 것이다.

불평등과 부자유는 항상 깊이 연관되어 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쓴 세계적인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말처럼 ‘자유’의 반대말은 ‘가난’이다. 불평등은 사회적 약자와 타자들에 대한 배제와 억압에 의해 재생산된다. 권력은 경제적 불평등을 유지ㆍ확대하기 위해 정치적 억압을 행한다. 여성이나 이주노동자에 대한 억압과 불평등을 생각해보면 쉽다. 공부하고 알 권리는 정치 참여뿐 아니라 경제적 기회에 대한 권리인 것이다. 이 작은 나라에서 그것은 대체로 불균등ㆍ불평등하게 분배돼 있었다.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학교를 다닐 권리가 제한돼 있었기 때문에, ‘헬조선’의 개인들은 사실 언제나 피눈물나게 ‘노오력’해왔다. 그 ‘노오력’의 배후에는 ‘경쟁’이 있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비상한 성실함으로 제약을 돌파해왔고, 독학자들은 특히 좋은 수저를 물려줄 부모를 만나지 못했음에도 학교 바깥에서 그런 일을 이뤄낸 사람들이다. 그들은 결코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헬조선’의 매우 평범한 시민들이다. 그 중에서도 오늘 소개할 독학자는 여성들이다.

치타 여사의 영어 실력

1960~80년대 한국의 고도 경제성장은 전적으로 민중의 희생을 통해 달성됐다. 노동자와 농민은 저임금ㆍ저곡가를 감당했고 월남에서 피를 흘려 경제성장의 종잣돈을 벌어왔다. 그런데 세계 최장 시간 노동과 무노조와 그것을 가능하게 한 반공 독재와 인권침해는 여성들에게 더 강하게 부과됐다. 젊은 여성들은 가정에서의 남존여비를 견디며 교육 기회를 남동생이나 오빠에게 양보하고, 직장 내의 일상적인 성차별ㆍ성희롱을 견디며 산업 전사가 되어야 했다.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88’ 11회에는 정환이 엄마 ‘치타 여사’(라미란 분)가 알파벳으로 자기 이름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영어 문맹이라는 에피소드가 시청자들의 관심과 공감을 끌었다. 골목 전체의 리더격이며 누구보다 머리가 좋은 치타 여사가 사실 알고 보니 겨우 초등학교만 졸업한 것이다. 이는 실제 사실을 반영한 것일 테다.

치타 여사 세대의 영민한 많은 한국 여성들은 상급 학교에 진학할 기회가 없었다. 100% 믿을만한 통계는 없지만 한국의 여성 문맹률은 1960년에 약 40%, 1970년에는 17.6%(국세조사보고, 13세 이상 여성)였다. 여성의 중학 진학률은 1966년 33%, 1970년 46.5%, 1975년 67%였고 고등학교 진학률은 1970년의 24.1%, 1975년의 35.5%, 1980년에 62.2%였다. 그러니까 치타 여성 세대 젊은 여성들의 경우엔 초졸~중졸 정도의 학력이 가장 일반적인 것이었고, 그들의 어머니들은 그보다 훨씬 낮은 학력을 가졌거나 문맹자인 경우도 허다했다는 뜻이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여성으로선 보기 드물게 용접공이 됐다. 그러다 한국사회의 모순과 참혹한 노동현실에 눈을 떠갔다고 한다. 사진은 2012년 김신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한 김 위원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여성으로선 보기 드물게 용접공이 됐다. 그러다 한국사회의 모순과 참혹한 노동현실에 눈을 떠갔다고 한다. 사진은 2012년 김신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한 김 위원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진숙의 공부와 삶

1960년생인 김진숙의 삶도 그 즈음 한국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여성들의 삶과 다를 바 없었다. 중학교까지 다녔고, 18세에 대우실업에서 여공 생활을 시작했다. 버스안내양, 우유 배달원, 신문 배달원 생활을 거쳤다. 수난과 고통을 참아내야 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월급이 좋다는 데 끌려 1981년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에 입사해 여성으로선 보기 드물게 용접공이 되었다. 그러다 한국사회의 모순과 참혹한 노동현실에 눈을 떠갔다 한다.

그 과정에서 김진숙은 ‘배움에 대한 갈망’을 산업체특별학급과 야학을 다니는 것으로 채우려 했다. 고등학교 졸업장이 갖고 싶었던 것이다. 오늘날 거의 잊혀진 산업체특별학급 제도는 박정희 정권이 1977년 3월부터 정규 중·고교의 배움에 목말라 있던 여성노동자들을 위한 특별학급을 개설하며 시작됐다. 여성 노동자들은 학교를 가기 위해 특별학급이 있는 기업체를 일부러 선택할 정도로 이 제도를 환영했다. 야학은 공부가 필요한 노동자들을 위해 그 시절의 대학생들이 자원봉사 형태로 만든 자발적 교육기관이었다. 그 전통은 식민지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영화 ‘변호인’ 등에 조금 묘사됐듯, 야학은 70~80년대 정치적ㆍ문화적 노학연대의 산실이기도 했다.

김진숙은 제도권 밖 학교를 다니며 공부에 대한 허위의식을 버리게 됐다. 사진은 희망버스 1주년을 맞아 2012년 서울 종로구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분향소를 찾은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진숙은 제도권 밖 학교를 다니며 공부에 대한 허위의식을 버리게 됐다. 사진은 희망버스 1주년을 맞아 2012년 서울 종로구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분향소를 찾은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함께 공부하는 삶

‘독학’의 의미가 단지 검정고시 같은 공인된 제도를 통해 대체 학력을 갖췄다는 것은 아니다. 독학자들은 스스로의 힘이나 또 다른 비제도적인 방법을 통해 고학력을 가진 사람보다 더 가치 있는 지성을 갖췄다는 뜻이다. 그러니 독학에는 ‘공학(共學)’도 포함시켜야겠다. 1970~80년대의 야학, 독서모임 등에서 행해진 일은 민중의 자기구제며 자기계몽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배움 자체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가능했던 것이었다.

이 학교 아닌 학교에서의 경험과 앎에 대한 서사는 많이 남아 있다. 노동사 연구자 유경순이 쓴 ‘나, 여성 노동자’란 책을 보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공장일을 하던 어린 청계피복 여성 노동자들이 옷 사이즈를 표시한 S M L XL 같은 영어 알파벳을 읽을 수 없는 건 물론 한글 문해력을 갖지 못한 경우도 있었기에 노동자들이 스스로 한글반을 만들어 서로를 가르쳐준다는 눈물겨운 이야기가 나온다. 또 여공 생활을 하기도 했던 신경숙의 소설 ‘외딴 방’에, 아니 그보다 훨씬 절절하게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 석정남이 쓴 ‘공장의 불빛’에도 배움에 대한 열망과 자기계몽의 서사가 있다.

그런데 김진숙이 그 학교 아닌 학교에 다닌 과정은 계층상승에 대한 욕망과 공부에 대한 허위의식을 버리는 과정이기도 했다. 25살쯤에야 찾아 갔던 야학에서 전태일을 만나게 됐기 때문이다. “어떤 아줌마가 가슴에 뭔가를 끌어안고 주저앉아 우는 것도 궁상스럽고”, “제목에 ‘노동자’라는 말이 마음에 안 들어 받아다 놓고는 펴 보지도 않은 채 먼지만 앉히고 있었”던 ‘전태일 평전’을 읽고는 그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부끄러워 꺼이꺼이 지리산 계곡처럼” 울며 깨달음을 얻게 됐던 것이다.

그 이후 김진숙의 삶은 우리가 잘 아는 바다. 그녀는 가장 헌신적이고 뛰어난 노동운동가의 한 사람이 되었고, 2011년 희망버스 운동의 주역이 됐다. 그녀의 배움은 자기만의 행복이나 계층상승이 아니라, 인간해방의 보편적인 가치를 향한 것이 되었다. 그녀의 책 ‘소금꽃 나무’에 실린 글들은 웬만한 제도 문학작품보다 더 강하고 진정한 지성을 담고 있다.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여공들. '외딴방'을 쓴 신경숙, '소금꽃 나무'를 쓴 김진숙처럼 이 같은 공장에는 여러 '김진숙'들이 있었을 것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여공들. '외딴방'을 쓴 신경숙, '소금꽃 나무'를 쓴 김진숙처럼 이 같은 공장에는 여러 '김진숙'들이 있었을 것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스스로 공부하고 깨우치는 시민의 힘

1970~80년대의 여성 노동자들이 가졌던 앎과 교육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에너지는, 총체적인 의미에서의 한국사회 발전의 자양이 되었다. 그 열망과 에너지는 물론 복합적인 것이라서 계층상승의 열망이나 허위의식도 있었겠다. 중요한 것은 그들 대한민국의 가난한 딸들이 어떻게 스스로의 힘에 의해 그들이 불평등과 차별을 극복해 나갔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여성 노동자들이 참여한 1970~80년대의 노동운동에도 표현된 바,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또 불평등과 차별의 극복 자체가 바로 우리나라의 민주화나 근대화에 다름 아니다.

세습자본주의의 양극화와 신독재의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대는 우리 사회엔 지금 그런 극복이 또 필요하다. 그 힘은 스스로 공부하고 깨우치려는 시민의 의지에서 나온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천정환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천정환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공동기획: 인문학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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