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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기고 부족하고 열 받게 하면 다 #장애인인가요?

입력
2018.03.15 04:4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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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정신병자 붙인 게시물 1만건

대다수가 혐오스럽거나 우스운 게시물

문제의식 죄책감 없이 비하 만연

인권위 진정 내도 “해줄 것이 없다”

인스타그램에서 #장애인 검색해 보면 볼 수 있는 이미지. ‘장애인’ 단어가 외모비하, 비난 등 부정적인 용어로 쓰이는 것을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장애인 검색해 보면 볼 수 있는 이미지. ‘장애인’ 단어가 외모비하, 비난 등 부정적인 용어로 쓰이는 것을 흔하게 접할 수 있다.
비난의 대상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는 경우
비난의 대상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는 경우
장애인과 비슷한 용도로 쓰이는 #정신병자
장애인과 비슷한 용도로 쓰이는 #정신병자

사례 1.

A씨는 지난해 12월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구획선을 무시한 채 주차된 차량들을 촬영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공개했다. 그는 “이똥대가리들 때문에… 내일 대설주의보에 지상주차를 해야함”이라는 분노의 글을 올리며 ‘무개념’ 차주들을 향해 #닭대가리 #장애인들이라는 해시태그를 날렸다. 이 게시물엔 139개의 ‘좋아요’가 붙었다.

사례 2.

지난 2월 B씨는 갑자기 끼어든 차량 때문에 사고가 날 뻔한 아찔한 상황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분노를 공유했다. 그는 블랙박스 영상을 공개하면서 상대 차량 운전자를 ‘도로 위의 정신병자’라 지목했다. 그리고는 #정신병자 #크레이지 #합법적망치질필요 등의 해시태그를 달았다.

위 두 사례 모두 운전자라면 한 번쯤 겪어봤음직한 ‘열받는’ 상황이다. 오죽했으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연을 공개하고 많은 이가 공감을 표시하겠나 싶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 원인 제공자들을 향한 분노의 일갈에 #장애인 #정신병자는 왜 갖다 붙였을까. 피해 상황과 전혀 무관한 장애인과 정신질환자들은 무슨 이유로 ‘닭대가리들’과 동격이 되어야 하나.

장애인의 사전적 의미는 ‘신체 일부에 장애가 있거나 정신 능력이 원활하지 못해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다. 정신질환자를 얕잡아 부르는 ‘정신병자’ 역시 ‘지속적인 정신적 장애, 반복성 우울 장애 등으로 감정 조절이나 사고 능력이 원활하지 못한 사람’일 뿐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혐오스러운 행동으로 불편을 야기하는 존재는 아니다.

그런데도 SNS 상에선 이들을 뭔가 모자라거나 그릇된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둔갑시키는 일이 흔하다. 자신에게 피해를 준 대상을 향해 욕설처럼 #장애인을 달고, 외모나 처지가 맘에 안 들 때도 #장애인을 자기 비하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친구들과의 진한 우정과 일치감을 드러낸 술자리 단체 사진, 장난스럽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찍은 ‘굴욕 사진’에도 #친구들 #미친놈들 #장애인들이 등장한다. 여기에 #또라이 #찌질이 #양아치 등 각종 비하 표현이 ‘동급’으로 따라붙는다.

친근함을 과시하기 위해 불필요하게 끌어다 쓰는 경우
친근함을 과시하기 위해 불필요하게 끌어다 쓰는 경우
부정적 느낌을 표현하는 용도로 쓰이는 경우
부정적 느낌을 표현하는 용도로 쓰이는 경우
외모 비하의 용도로 쓰이는 경우
외모 비하의 용도로 쓰이는 경우
문제의식 없이 농담처럼 쓰이는 경우
문제의식 없이 농담처럼 쓰이는 경우

인스타그램에서 #장애인 #장애인들 #정신병자로 검색해 보니 1만여건에 달하는 관련 게시물 중 상당수가 장애인을 부정적인 존재로 암시하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게시물들에서 장애인 자체를 비하하고자 하는 뚜렷한 목적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일상에서 만연하다 보니 아무런 문제의식이나 죄책감 없이 #장애인 #정신병자를 끌어다 쓰고 ‘좋아요’를 얻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평창 패럴림픽 덕분에 최근 들어 장애인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긍정적인 게시물이 늘었지만 이런 분위기가 얼마나 지속될지 미지수다.

‘비하 아닌 비하’ 게시물을 접한 장애인들은 불쾌해 하면서도 대응 방법이 없는 현실에 무력감을 호소했다. 뇌병변 1급 장애를 가진 황인현(49)씨는 “무심코 던진 말이라도 장애인 입장에선 명백한 폭력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내봐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답변뿐”이라고 말했다. 8년 전 조울증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인 이모(34)씨는 “’정신병자’란 표현 자체가 기분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이미 욕설로 굳어졌다는 생각에 아예 체념 중“이라고 말했다.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무능’ ‘못생김’을 뜻하는 말로 SNS 상에서 공공연히 노출되다 보면 현실에서의 비하와 혐오 감정이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용석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정책홍보실장은 “SNS의 파급 효과를 감안할 때 이런 표현들이 일시적이거나 사적인 단계에 그치지 않고 현실 사회의 그릇된 인식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라며 “SNS에서 벌어지는 현상이 혐오 대상에 대한 실제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처벌이나 정화 노력을 통해 경각심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장애인 차별 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장애인에 집단 따돌림을 가하거나 모욕감을 주고 비하를 유발하는 언어적 표현 및 행동이 금지돼 있으나 이를 어긴 가해자에 대한 처벌 조항은 없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한 장애인은 “’못생겼다’는 소리 듣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특별한 대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장애인도 이런 말을 듣기 싫어하는 똑같은 사람이란 점만 기억해 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장애인을 검색하면 함께 붙어있는 해시태그들을 보면 문제의식 없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장애인을 검색하면 함께 붙어있는 해시태그들을 보면 문제의식 없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해시태그(Hashtag): 분류와 검색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 기호를 붙인 단어나 문구 또는 이러한 기능을 뜻한다. SNS에 게시물을 올리면서 해시태그를 달면 다른 사용자들이 동일한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을 모아서 볼 수 있다. 젊은 세대들은 자신의 감정이나 상황을 해시태그의 나열로 표현하기도 한다.

박서강 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주성 기자 poem@hankookilbo.com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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